명상으로 운동 비전 세우고 세상 치유

요가, 기체조, 자기발견 프로그램 등

화관에 분홍색 천을 허리에 두르고 평화와 반전을 기원하는 여신들의 행진. 지난해 정전 50주년을 맞아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며 명동성당 앞에서 여성단체들이 펼친 고요한 '걸음명상'은 그동안의 반전 시위와 달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당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이하 평화여성회) 김숙임 대표는 “여성단체들이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 방한시 배운 '걸음명상'을 평화를 기원하는 활동에 실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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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수련은 여성단체들의 자기치료에서 출발해 운동의 비전을 정립하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여성단체의 운동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반전시위에서는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걸음명상'이 진행됐다.

<사진 ·민원기 기자>

명상은 여성단체와 여성운동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과정이다. 여성단체들의 워크숍, 수련회, 지도력 훈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명상, 요가, 기체조, 자기발견 프로그램 등이기 때문. 특히 여성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재충전 프로그램에서는 명상 등 마음수련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명상 등 심신수련 프로그램이 저임금과 격무에 시달리는 여성운동가들에게 잠깐의 휴식이 되는 한편, 자신을 돌아보며 내성과 영성을 강화하고 운동적 삶을 새롭게 세우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 조영숙 사무총장은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을 위하는 것이지만 실제 일에서는 활동가들이 소진되고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는 등 목표와 과정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며 “명상 등 마음수련을 통해 인간으로서 삶의 방식, 인간과 사회의 관계 등 운동의 궁극적인 고민과 닿을 수 있어 여성단체에서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체활동의 한 코너로만 명상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전문가를 초빙, 명상프로그램만으로 채워진 활동을 진행하는 여성단체도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의 경우, 단체활동가들의 재충전을 위해 계룡산 수련원에서 3박 4일 동안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김지현씨는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라며 “바쁜 일상에서 숨을 고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평화여성회에서는 3년 전부터 '평화심성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명상을 통해 개인 내면의 분노와 화를 다스리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단체활동의 명상 체험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명상을 생활화하는 여성운동가들도 적지 않다. 여성연합 대표 출신인 지은희 여성부 장관의 마음공부 '방하'나 이상영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의 '요가' 사랑은 대표적인 사례. 이상영 대표의 경우, 이메일 주소를 '에코요가'로 사용할 정도다. 한여노협 부대표를 지낸 왕인순씨는 심신의 건강회복을 위해 여러 명상프로그램을 찾다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진학, 상담심리학과 요가치료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상영 대표는 “90년대 중반부터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운동단체에서 명상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여성연합 등에서 '방하'수련이 도입됐고 요가도 조금씩 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이 대표는 “활동가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잃어버린 육체적 건강을 되찾기 위해 명상수련에 접근한 것이 정신과 육체의 균형, 평정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왕인순씨도 “70,80년대부터 단체에서 일해 온 여성활동가들은 활동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면서 90년대에 이르러서는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며 “자기치료를 위해, 또 사회활동으로 충족되지 않은 실존적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요가 등 명상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활동가들의 자기치료에서 출발한 명상 프로그램이 이제 스스로를 치유할 뿐 아니라 나아가 운동의 비전을 재정립하고 세상의 평화를 향한 여성단체의 하나의 운동방식으로 새롭게 이어지는 것이다.

김선희 기자son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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