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 현모양처 환상 떨치고 '악처'되자

신도림에 사는 주부 Y씨(36). 출판사 편집장이자 대학원생, 6살배기 딸을 둔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인 Y씨는 만성피로와 근육통에 시달리다가 최근 병원을 찾았다. 그에게 내려진 병명은 '스트레스'. 최근 Y씨처럼 스트레스 증상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음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산업화 사회에서 남성들의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취업, 결혼 등으로 인한 역할의 다중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ㆍ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역할 이데올로기 등 남성중심 사회 기저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 현실과 특성에 따른 스트레스 유형과 탈출법을 살펴보자.

홧병에 이어 바쁜 여자 증후군 발생…우울증·비만·성욕감퇴 등 각종 후유증

'요람에서 무덤까지' 스트레스의 연속

아들 신드롬이 유난한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딸'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어머니, 할머니 등 동성에게조차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 된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결혼ㆍ혈통ㆍ현모양처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한 시집 스트레스, 임신 스트레스 혹은 슈퍼우먼 스트레스까지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스트레스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시집 스트레스는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한국사회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5145명의 주부 중 77%가 시집과의 갈등으로 남편과 불화한 경험이 있으며 55%는 명절에 시집에 대한 부담감으로 심리적ㆍ신체적 불편함을 느꼈다는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나 시어머니를 '가장 스트레스 주는 인물'로 꼽은 조사결과 등은 일방적인 시집문화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러한 스트레스가 발전할 경우 바디 블루스(Body bluesㆍ경증 우울증), 정신분열 등을 비롯, 소화성 궤양, 홧병, 섬유근육통,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심화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물리적ㆍ심리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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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여성들(좌<사진·'웰빙명상'(명상신문사)>)과 제사 등 집안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한 여성(우<사진·민원기 기자>).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용기가 필요하다.

슈퍼우먼 되려다 '바쁜 여자 증후군' 걸려

미국 텍사스주의 산부인과 개업의 브렌트 보스트 박사는 2002년 '바쁜 여자 증후군'(HWSㆍHurried Woman Syndrome)이라는 신종 질환을 제시했다. 보스트 박사에 따르면 피로나 우울증, 비만, 성욕 감퇴 등의 증상을 보이는 이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로, 맞벌이 여성은 물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독신여성과 전업주부에게 주로 나타난다. 실제로 미국의 25∼55세 여성의 25%에 해당하는 6000만 명이 이 증상을 앓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역시 맞벌이 상황에도 불구, 가사와 양육 책임까지 떠맡고 있는 한국여성들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맞벌이를 해도 가사나 육아는 당연히 아내의 몫이라는 모순된 성역할 인식이 여성들을 이중고에 몰아넣는 것. 직장과 가정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역할간 갈등'(inter-role conflict)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발전, 가정생활은 물론 직장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결국 사회적 생산성까지 떨어뜨리게 된다.

전업주부의 스트레스도 만만하지는 않다. 맞벌이 주부와 마찬가지로 육아, 시댁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경제수단이 없기에) 경제문제까지 봉착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데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다중적 역할에 대한 압박감을 벗어나 보다 자신을 중시할 것을 제시한다. 배기영 동교신경정신과 원장은 “한국여성들은 이제 '슈퍼우먼'의 환상을 탈피하고 보다 악한 며느리, 악처가 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자기를 중시하고 우선시한다면 그러한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 원장은 “또한 나를 위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취미나 관심거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방안”이라고 덧붙였다.

김은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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