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의 영혼을 훔치다

내 속에 대자연이 있고, 대자연 속에 내가 있다.

바이칼 생태영성 순례는 '녹색영성을 일깨우는 지구행성 순례'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 17명이 녹색문화기금의 도움을 받아 2002년 6월, 보름간의 일정으로 다녀온 여행이다. 여행에 참여한 녹색연합 김경화 녹색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의 글을 전재한다. <편집자 주>

신비롭고 매혹적인 야성의 땅

하늘과 땅과 바이칼과 하나되는 순간 살아 있음 느껴

한국을 떠나기 전의 나는 어떤 기대도 흥분도 갖지 못했다. 여느 때의 지방 출장 때보다 떠남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 채 여정을 맞이했다. 고백하건대, 바이칼 생태영성순례에 지원이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뿐 아니라 과연 보름간의 기간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방관적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3시간 30여 분이 경과했을 때 비행기가 몽고 상공으로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연초록의 초원의 낯선 땅의 풍경을 접하는 순간 섬뜩한 욕망을 느꼈다. 생명이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는 그 매력이 내 시야를 끌어당겼다.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이끌림으로 나는 몽고의 초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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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몽고 대평원.

<사진·그린그룹

녹색문화기금>

울란바토르 공항을 빠져나와 미니버스로 달리며 우리가 만나는 풍경들은 비행기에서 본 것 보다 매력적이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러한 초원을 보았다면, 생태적 가치가 낮다든지 경관의 질이 낮다든지, 종의 다양성이 빈약하다든지 등의 여러 관념적인 해석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몽골 땅은 너무나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조금은 열악하고 조금은 빈약하고 조금은 거친 이 야성의 땅이 나의 어떤 부분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바이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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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어 바이칼에 도착했다. 어둠 속의 바이칼은 눈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소리로 만날 수 있었다. 어둠 속을 걸어 만난 바이칼 소리는 잔잔하고 낮고 간결했다.

▶바이칼 호수.

언젠가부터 '영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항상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장면, 작고 맑은 호수와 수면에 어른거리는 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 바이칼이 내게 그런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일 내 눈앞에 펼쳐질 바이칼의 모습은 어떠할까? 온천휴양소를 출발해 한참을 걸어 도착한 바이칼은 어제 소리로 만난 바이칼과는 사뭇 달랐다. 풍경은 바다와 같았지만 바다와 같은 광활함에 우리네를 쓰다듬는 따스함과 너그러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스며나오는 신성함을 느꼈다. 바이칼에 기대어 사는 오물을 팔러 나온 여인과 아이들의 살내음과 삶의 내음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참으로 멀리 와버렸구나. 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비추어질까? 아름다운 이곳의 모습 그대로 이들의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한다.

알흔 섬의 첫날밤

오랜 뱃길을 따라 알흔 섬에 닿았다. 어느 섬에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함, 제한된 섬이라는 공간을 의식해서일까? 여정을 떠난 지 며칠 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상념으로부터 자신을 놓고 있었다. 모닥불과 보드카, 아무런 상념 없는 취함. 더 넓은 하늘과 땅, 깊고 깊은 호수가 내 속에 있고 나는 그들 속에 있다.

알흔 섬 민박집 뒤의 언덕은 제주도의 마라도와 너무나 흡사한 풍경으로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해변가를 연상케한다. 순례단원들이 둥글게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의 손과 팔이 나의 의식과 육체를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해 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 신비함이 밀려오면서 나는 어떤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다. 움직임과 호흡이 커지면서 내가 느낀 존재는 대자연과 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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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가 하늘을 향해 나를 열게 하고 내 정수리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목과 눈을 뚫고 울음과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쩌면 울음과 눈물이 아니라 어떤 존재에게 고하고자 하는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다. 그 원초적 대화를 나누고 온 기운으로 나와 내 가슴을 어루만지고 감싸주는 기운을 느끼면서 내가 그토록 절실히 원하던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홀로가 아니다. 하늘도 땅도 바이칼도. 항상 내 곁에 나와 함께하는 미래가 나를 기다린다. 나를 깨우고 나를 감싸주는 하늘과 땅과 바이칼을 느끼기 위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나 보다.

◀몽고의 유목민.

대자연의 존재

어제의 특별한 기분을 정리하지 못한 채 샤먼과 제를 올리기 위하여 불칸 바위 앞으로 갔다. 샤먼은 강하고 조용하고 빛나는 눈빛을 지녔다. 나와 이웃, 세상의 평화를 위한 그의 기도가 있었다. 샤먼은 한 사람 한 사람 순례단 모두를 안아주었다. 나를 꼭 안아주며 왼쪽 빰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어 주었다. 그와 내가, 우리가 멀리 있지만, 따로가 아니라는 것. 어제의 그 기운이 다시 떠오른다.

불칸 바위 앞에서 제를 올린 후 가진 자유시간에 어제 명상을 가졌던 언덕으로 갔다. 언 덕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좌선을 하고 명상에 잠겼다. 자연의 기운과 만나면서 왼쪽 언덕에서 분출되는 아주 강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나의 정수리를 강하게 흡입하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분출되는 언덕으로 향하게 했다.

한참을 걸었을까? 내 눈에는 믿기지 않을 장면이 나타났다. 나를 이끈 힘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침에 일상적으로 만난 발칸 바위였다. 발칸 바위는 아침과는 다른 모습,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강한 기운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내 몸이 받아들이게 했다. 내가 살아가는 생에서 감히 만나기지 못할 그런 존재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나를 받아들여준 것, 앞으로 남은 내 생에 항상 함께 할 존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은 내 생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과 같았다.

러시아를 떠나며

12일이 지나 밤새 열차는 몽고와 러시아 국경을 향해 달렸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풍경과 이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이곳은 내 영혼의 휴식처이자 요람이다. 내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내가 이 땅에 오게 한 힘에 감사하며, 내 가슴 깊은 이야기를 바이칼 호수에 묻고, 저 광활한 초원에 묻고, 절대적 존재 자연 속에 묻고 떠난다. 그리고 바이칼의 영혼을 훔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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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녹색사회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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