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지난 6월 2일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국회 본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지난 6월 2일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국회 본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장이었던 박지현의 한계를 모르지 않는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정해 합의를 도출하도록 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그런데 박지현은 자신의 주장이 수용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하지 않은 채 혼자 내질러버리는 방식을 반복했다. 그가 주장한 ‘86 용퇴’, ‘팬덤정치 청산’, ‘이재명 의원 당대표 출마 반대’ 등은 모두가 민주당을 향한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들이었다. 그럴수록 박지현은 그런 주장들을 관철해 내려면 누구와 연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필요했다. 주장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성사되는 것이 중요했다면 말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민주당 내부의 벽은 20대 원외 여성 정치인의 목소리 하나로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더구나 그가 민주당의 팬덤정치와 전면전에 들어간 계기가 당 대표 출마 자격의 ‘예외 인정’ 요구라는 점에서, 꼭 박지현이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하기 어려운 점도 분명 있다.

그래도 그렇지, 민주당 정치인들과 팬덤들의 언행들을 보노라면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에 도전하는 20대 정치인을 가운데 놓고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지현이 86 용퇴, 팬덤정치 청산의 목소리를 내자 윤호중 당시 비대위원장은 책상을 ‘쾅’ 내리치고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일이 있었다. 어느덧 60줄에 들어선 86 정치인이 20대 청년 정치인을 향해 그런 식으로 호통을 치는 광경에서 이후 민주당이 박지현을 대하는 태도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박지현을 나무라고 훈계하는 선배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차고 넘친다. 그러면 그들은 이제껏 무엇을 했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대선 후보)이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당시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이 3월 8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대선 후보)과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당시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이 3월 8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더 나아가 박지현을 향한 ‘개딸’ 팬덤들의 공격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이재명 의원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박지현이 과자를 입에 물고 남자 어린이의 입으로 전달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왔다. 개딸들은 8년전의 그 영상을 공유하며 ‘박지현 아동 강제 성추행 정황 원본 동영상’ ‘박지현 남아 성추행 논란’ 등의 글을 올려댔다. "매주 주일마다 보던 아기와 놀면서 과자로 장난치는 장면일 뿐"이라는 것이 박지현의 설명이었다. 박지현이 근래 들어 이재명 의원을 비판하는가 하면, 성희롱 발언 논란을 빚은 최강욱 의원의 징계를 요구했던데 대한 앙갚음인 셈이었다.

그리고 민주당 권리당원인 남성 유튜버가 박지현이 사는 집이라며 어떤 집 앞에 서서 그를 비난하는 생방송을 하는 사건도 생겨났다. 그 유튜버는 “우리 최강욱 의원님께서 딸딸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짤짤이라고 말했는데 성희롱으로 누명을 씌워 6개월 조치를 했다. 영유아 성추행범 박지현씨”라고 방송했다 한다. 박지현은 “디지털 시대에 누군가의 집 주소를 터는 일이 이렇게 쉽다는 것을 디지털성범죄를 파헤치면서 수백번 목격했다”며 “정말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팬덤정치 청산을 입에 담았던 박지현은 바로 그 팬덤들에 의해 ‘신상털이’를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여론이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대선 후 박지현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던 이재명 의원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이 의원은 박지현에 대해 “많은 가능성을 가진 우리 당의 중요한 자산”이라면서 “생각이 다르다고, 기대와 다르다고 비난·억압하는 것은 이재명과 동지들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그 말은 과연 진실일까. 팬덤정치를 끊어내자는 주장을 했다가는 공격당하고 수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이제는 굳어져버린 민주당의 팬덤문화가 됐다. 그러니 이 의원의 말조차 임기응변의 말장난일 뿐 팬덤정치 청산에 대한 진정성과 의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민주당의 팬덤정치가 공격하고 있는 것은 개인 박지현이 아니다. 우리 정치의 앙시앵레짐(구체제)에 반기를 든 청년 여성 정치에 대한 공격이다. 누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의 숙제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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