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박지현'들의 청년정치를 위해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여성신문

갑자기 더불어민주당이 바쁘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당대표 출마 발표 이후 침묵과 무시와 비난과 조롱으로 일관했던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박지현의 안전을 걱정하며 민주주의를 호명하고, 앞을 다투어 팬덤정치를 비판한다. 이재명 의원 조차도 "생각이 다르다고, 기대와 다르다고 비난·억압하는 것은 이재명과 동지들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박 전 위원장을 향한 지지자들의 비난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당당하게 민주당 권리당원임을 밝힌 한 남성이 유튜브 스트리밍 방송을 통해 박 전 위원장이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어린아이와 과자로 장난치는 장면을 내보며, 영유아 성추행을 했다는 악의적인 허위 기사를 유포했다. 이건 단순한 허위 기사가 아닌 명백한 테러이고 범죄이다. 여기에 더해 '재명이네마을'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기사를 올려놓고 "박 전 위원장을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아가자”고 잔인할 정도로 당당하게 범죄행위를 공모했다. 이 잔인함과 폭력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먼 곳에 있지 않다. 한 주 내내 박 전 위원장의 출마를 특혜나 요구하는 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공부나 더하라는 둥 온갖 훈수를 가장한 비난과 조롱을 일삼던 그들이 만든 결과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폭력 팬덤이니 극렬 팬덤이니 비판하면서 박 전 위원장의 안전을 걱정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민주당의 지도자들이라고 불리우는 그들의 탐욕이 부른 참사이다. 계파의 이익에 눈이 먼 그들의 거침없는 조롱과 비난은 팬덤의 지지자들에게는 하나의 신호와도 같았을 것이다. “박지현을 때려라”. 그래서 지금의 그들의 호들갑이 가증스럽다.  

이재명 의원과 그의 동지들은 박 전 위원장에게 어떤 기대를 했던 걸까? 어떤 기대를 했기에 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의 대선과 지선을 이끌었던 전직 비대위원장의 자격으로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선언 하나에 이토록 잔인한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걸까? 이제 20대 청년여성들의 표가 필요했던 양떼몰이도 축제도 끝났으니 조용히 사라지거나 27살 지방대 출신 여성의 ‘급’에 맞는 떡고물이나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했었는데 “감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이런...” 이것이 기대라는 단어에 짙게 묻어 있는 그들의 내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박 전 위원장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를 그들의 정치가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다. 엄혹한 시절 국가폭력에 대항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일구어왔던 민주당의 빛나는 역사가 586세대의 권력유지를 위한 미사여구로 전락해버린 지금, 박 전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년과 여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이 폭력과 혐오를 함께 근절하자는 박 전 위원장의 제안을 억지나 미숙함으로 거부한 순간 민주당의 빛나는 역사를 한낱 계파들의 이익만 드글거리는 탐욕의 오물통으로 처박아버렸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청년세대의 미래는 어둡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염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뜨거워진 지구는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은 폭력적이고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디지털 중심의 새로운 사회경제의 등장은 다른 대안을 요청하고 있다. 이 불행한 미래를 더 오래 감내해야 할 세대는 기성세대가 아니다. 청년세대가 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하고 박 전 위원장이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그들이 더 오래 살아야 할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박지현'이라는 이름의 청년들이 불행한 미래에 맞서 자신들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고 방책을 세울 수 있도록 그들의 정치,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 그 청년은 누군가의 개딸이나 양아들이라는 시대착오적 비주체가 아니라 박지현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일구어갈 이 시대의 주체여야 한다. 팬덤 속의 익명의 지지자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구시대의 질서와 가치에 맞서 싸우는 대적자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은 박 전 위원장의 당대표 선거 출마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를 일구어왔던 민주당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일 것 같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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