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SG에 안전보건 추진체계·산업재해율 명시
MSCI의 ESG 평가지표도 근로자 안전 중시

안전 투자는 ESG 경영의 필수 요소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지난 6월 16일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개정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밝히고 국회에서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중대재해법 완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전 투자는 ESG 경영의 필수 요소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pixabay
안전 투자는 ESG 경영의 필수 요소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pixabay

정부가 2020년 12월 내놓은 K-ESG 가이드라인을 보면 S(사회) 부분에 산업안전 항목이 있다. 산업안전 항목은 구체적으로 안전보건 추진체계와 산업재해율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안전보건 추진체계 항목은 “조직이 산업인력 손실, 구성원 사기 저하, 생산성 및 품질 하락, 노사관계 악화 등으로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예방”하기 위해 조직의 안전보건 관리가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산업재해율 항목은 조직의 지난 5개년 간 산업 재해율이 감소 추세에 있는지, 지난 1개년 산업재해율이 미만인지 측정한다.

ESG 차원에서 산업 안전을 점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MSG 평가기관의 MSCI의 ESG 평가지표를 봐도, S(사회)부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이 노무관리(Labor Management)와 건강‧안전(Health & Safty)다.

최근 산업계의 흐름 역시 안전에 투자하는 데 집중돼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6월 30일 ‘2023년 재난 안전 예산 사전협의(안)’를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기획재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내년 예산요구액은 24조3209원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특히 ‘사회재난 및 안전사고’가 전체의 51.9%인 12조6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제주항공도 최근 안전 관리 시스템 유지 관리, 교육 및 훈련 강화, 안전 조직 강화 등에 안전투자비용을 2274억원 사용하기로 했고, 동국제강 역시 안전보건 부문에 지난해보다 142%늘린 401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히는 등의 흐름을 보인다.

기업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발생할 생산 차질, 기업이미지 하락, 노사관계 약화, 노동력 상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더 큰 비용지출을 막을 수 있다.

1994년 미국 다국적 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와 1990년대 한국 L기업이다. 유니언카바이드에서는 인도 화학공장 누출 사고로 사고 당일 2000여명, 총 2만5000여명의 근로자 및 주민이 사망했다. L기업에서는 20브로모프로판 사용으로 인해 20여 명의 근로자에게서 생식독성장해가 발생하였다. 이 두 기업은 민형사상 책임, 직간접적 손실액 발생, 노사갈등 심화 등으로 해당 사업장을 폐쇄하게 됐다.

애플의 경우도 있다, 애플의 위탁 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 공장에서 고강도 노동환경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늘어나자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확산하였고 이것이 곧 애플의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왼쪽부터 산업재해가 1인당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 산업재해가 영업이익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왼쪽부터 산업재해가 1인당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 산업재해가 영업이익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표. ‘재무제표로 살펴본 기업의 산재 예방 투자 효과’ 발췌.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재해율과 기업 이익의 연관성을 구체적인 수치로 계산한 결과도 있다. 2020년 9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간한 ‘재무제표로 살펴본 기업의 산재 예방 투자 효과’ 보고서는 2011~2018년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586개 기업의 산업재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기업의 산업재해율이 1.0% 증가하면 노동자 1인당 연 매출액은 약 1215만~1431만원 감소했다. 이는 분석 대상 기업 1인당 평균 매출액(약 7억원)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구원은 산업재해가 노동자 1인당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봤는데, 산업재해율 1.0% 증가 시 1인당 영업이익액은 약 211만~247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자 1인당 평균 영업이익액(약 3000만원)의 8.0% 수준에 해당한다. 이처럼 산업재해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는 매출액 감소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완화‧폐지가 될지라도 기업이 안전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자와 상관없이 소비자들이 (안전한 회사의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즉 기업이 주체적으로 안전에 투자해야 고객들의 공감과 신뢰를 받을 수 있어 지속 경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정책제도연구부 연구위원도 “한국의 소득수준이나 사회적 요구 등을 생각해 볼 때 이제는 (안전에 대한 투자를) 당연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의적 움직임만으로는 산업 재해를 막기 어려우며 결국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사회가 지속 가능해야 기업도 존속할 수 있고 그 지속가능성과 공존을 위해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이미 문제의식을 느낀 국가들은 (산업안전과 관련한 법들을) 제도화하고 실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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