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위 4일 117차 회의서 의결
2차 피해 인정 범위 넓어져
‘진지한 반성’은 여전히 감경인자로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참고하는 기준인 양형기준의 양형인자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이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된다. 2차 피해의 인정 범위도 넓어졌다.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17차 양형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17차 양형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7월 4일 제117차 회의 결과 이처럼 의결했다고 5일 밝혔다. 변경된 사항은 2022년 10월 1일 이후 공소 제기된 사건에 대해 적용한다.

오랜 논쟁거리였던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은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수치의 정의는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이다. 그러나 성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 짜증, 공포, 무력감 등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지금까지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은 피해자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양형위원회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내면서 “범죄의 피해자가 실제로 갖게 되는 피해 감정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한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는 과거의 정조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고, 마치 성범죄의 피해자가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양형인자 중 2차 피해의 인정 범위도 넓어졌다. 기존에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로 돼있었던 부분을 ‘2차 피해 야기’로 변경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합의 시도와 무관하게 피해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가 추가됐다. 양형위는 “피해자의 인적 사항 공개, 성범죄 신고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 2차 피해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한다. ⓒ여성신문

그러나 성적 수치심에서 성적 불쾌감으로 표현만 변경됐을 뿐 ‘극도의 성적 불쾌감을 증대하는 행위’에 대한 정의가 수정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양형기준에 따르면 범행과정을 촬영한 경우 등으로 위 행위를 정의한다. 이는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제3자의 시선에서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정안에 남아있는 ‘진지한 반성’ 조항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진지한 반성이 감경인자로 있다는 것 자체가 가해자 입장의 사정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가해자의 여성단체 후원이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돼 감경요소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에서는 “기부가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되도록 명시한 내용은 없었으나 재판부의 재량으로 인정되어온 관행이 있다”며 “이러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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