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딸아이의 전화를 받은 것은 어르신들 앞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동방삭이 대학'이라는 학교 이름 덕인지, 어르신들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셨다. 내 목소리를 확인한 아이는 다짜고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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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다쳤어!”

순간 철렁 내려앉는 가슴.

“어디를? 얼만큼이나? 많이 아파?”

정신 없는 질문에 아이가 오히려 태연하다.

“무릎이 찢어졌는데 양호선생님이 피를 멈추게 해주셨고, 이따가 병원 가서 꿰매야 된다고 하셨어.”

집으로 오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다행히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아 세 바늘을 꿰맸지만, 구부렸다 폈다 하는 무릎 부위여서 꼬박 2주일 동안 아이는 붕대를 감은 채 불편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학교를 오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뻗정다리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머리를 감는 일이었다. 목욕탕 문턱에 아이 머리를 걸쳐놓고 감기는데, 어느새 그만큼이나 자랐는지 무겁고 버거워 등에서 땀이 흐르곤 했다. 가뜩이나 건초염에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로 두 번이나 손목에 깁스를 한 전력이 있는지라, 내가 끙끙대면 아이는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내가 나중에 엄마 아프면 머리 잘 감겨줄게.”

비슷한 시기에 친정에서는 아버지가, 백내장 수술을 하신 어머니 머리를 감기느라 쩔쩔 매고 계셨다. 딸인 내가 감겨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 가겠노라 했더니 아버지가 맡겠다고 하셨단다. 어머니께는 '당신이 내 머리 감겨준 적 많은데, 이번에는 내가 잘 감겨줄게' 하시더란다. 크고 거친 아버지의 손이 세심하지 못해 가끔 머리카락이 당겨 아프긴 해도 어머니는 머리 감겨주시는 아버지가 좋은 눈치셨다.

양쪽 집의 '머리 감겨주기 비상사태'를 겪으며, 문득 아이들이 아기 때 온 몸을 품에 안고 목욕시키던 생각이 났다. 나중에 나 아프거나 늙으면 목욕시켜 달라고 아이를 씻기는 부모가 있을까. 내가 해준 대로 그대로 돌려 받으려고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부모가 있을까. 받으려고 주는 사랑이 아니기에 그토록 귀한 것이던가.

연년생 두 아이 중 둘째는 잘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하도 지치고 힘드니까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의 감사와 기쁨도 잊은 채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마구 원망을 해댔다. '자녀는 선물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힘든 존재가 무슨 선물이야' 불평하면서도, 자녀라는 존재가 왜 선물인지 그 대답을 찾고 싶었다. 어느 날 겨우 잠든 아이를 떼어놓고 누우니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답.

'그렇구나. 이 세상에 되돌려받지 않고 그저 주기만 하는 것은 부모 자식밖에는 없구나. 그 어디에서 내가 또다시 이런 경험을 하겠는가. 아, 아이는 존재 자체가 선물이로구나. 나를 키우는 양식이며 성장의 뿌리로구나…'

“자녀는 선물입니다. 어려서 예쁜 짓 할 때 이미 평생 효도 다 받으셨으니까, 호의호식시켜주기 바라지 마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아주면 그게 효도다 생각하십시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자녀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시는 것 자체가 선물입니다. 세상에 단 한 분, 우리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만은 대신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행동이나 태도를 못마땅해 하기 전에 그분들께서 이 땅에 존재하심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앞의 이야기는 노인대학에서, 뒤의 이야기는 노년준비 교육에서 만나는 중년세대에게 하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 아이는 실밥을 뽑고 제 머리 제가 감기 시작했고, 어머니도 이제 이틀 뒤부터는 손수 머리를 감게 됐다며 기분 좋게 웃으신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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