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페미니즘 소설’ 쓴 작가 김말봉을 다시 만나다
70년 전 ‘페미니즘 소설’ 쓴 작가 김말봉을 다시 만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6.28 14:05
  • 수정 2022-08-03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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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스타 작가·여성운동가
김말봉의 삶과 소설 세 편 다룬
극단 수수파보리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소극장 산울림 ‘고전극장’ 개막작
8월까지 한국고전 재해석 5편 선보여
극단 수수파보리의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한 장면. ⓒ산울림소극장 제공
극단 수수파보리의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한 장면. ⓒ산울림소극장 제공

‘멜로드라마의 대모’, 1930년대 스타 작가, 성매매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운 여성운동가. 그러나 잊혀진 이름. 김말봉의 삶과 작품이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극단 수수파보리의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근대 한국문학을 빛낸 여성 작가,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 『고행』, 『화려한 지옥』을 각색해 옴니버스식으로 선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재해석했다. 올해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의 ‘고전극장’ 무대에 오른 첫 작품이다.

두 해설자가 나와 유쾌한 만담을 펼치며 친절하고 흥미진진하게 극을 이끈다. 근대에 유행했던 동요, 가곡, 신민요를 결합해 1930~1950년대를 실감 나게 재조명한다. 관심 없는 이들도 웃고 공감하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연출했다. 그 시대 널리 쓰이던 언어 표현, 억양까지 구사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제목에 표준어에 맞지 않는 표기를 그대로 쓴 이유는 김말봉의 말투를 살리기 위해서다.

극단 수수파보리의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한 장면. ⓒ산울림소극장 제공
극단 수수파보리의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한 장면. ⓒ산울림소극장 제공

김말봉은 190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여성이 교육받는 게 당연하지 않던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1927년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귀국해 중외일보 기자로 일했다. 1932년 단편소설 「망명녀」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신문·잡지에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통속연애사를 다루면서 당대 여성들의 생활과 사랑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대표작 『찔레꽃』은 한국 멜로드라마의 원류로 불린다. 이 극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착하고 청순하나 가난한 여자 주인공이 겪는 고난, 갈등, 엇갈린 로맨스 등 익숙한 서사가 펼쳐진다. 거짓말, 음모, 살인 등 ‘막장 드라마’ 요소도 빠지지 않는다. “김말봉이 없었다면 한드(한국 드라마) 열풍도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말봉의 소설 속 여성들은 주로 아내, 어머니, 딸 등으로 그려지고,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는 모습 등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나약하기만 한 여성들은 아니다. 정의를 추구하고, 고난 끝에 자아를 발견하는 근대적·주체적 여성상을 제시했다.

1951년 발표한 『화려한 지옥』은 ‘대놓고 페미니즘 소설’이다. 성매매 여성의 해방을 외치고, 불합리한 남성 권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일제 시대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가가 관리하는 산업형 성매매, ‘공창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때에 쓴 작품이다.

김말봉은 폐업공창구제연맹을 결성해 공창제 폐지를 촉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여성운동가였다. 1946년 인신매매 금지령, 1948년 공창제 폐지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회복지시설 박애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극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강조한다. 

극단 수수파보리의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한 장면. ⓒ산울림소극장 제공
극단 수수파보리의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한 장면. ⓒ산울림소극장 제공

“여인은 인간이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선하고 그리고 어느 남자보다 훨씬 강한 일면이 있는 것이다.” (1951년, 『화려한 지옥』 서문)

“약자가 이기는 비결은 하나밖에 없다. 뭉치는 것이다. 뭉치고 뭉쳐서 우리의 권리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법과 제도와 조직을 만들어 내자.”(1950년, 부인경향, 1권 1호)

궁지에 빠진 불륜 남녀, 특히 두 여자를 농락하다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남성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초기작 『고행』도 흥미롭다. 김말봉은 “결혼은 연애의 무덤”, “약혼 시절에 오! 나의 마돈나여! 나의 비너스여! 하고 꿇어앉은 삐에로가 결혼 바로 이튿날은 가장이란 엄연한 존재로 변한다”(1947년, 부인, 2권 6호)라며 당대 남성들의 이중성과 비도덕성을 꾸짖기도 했다.

그는 문학은 일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순수귀신을 몰아내라”, “문학이 위해야 하는 건 소설가 자신이 아니라 대중 독자여야 한다”고 일갈했고, 대중이 문학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려 힘썼다. 1952년 베니스 세계예술가대회에 참석했고, 1954년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여성 장로가 됐다. 한국예술원 위원과 한국문학가협회 대표위원도 맡았다.

그러나 생전 그가 누린 인기와 그의 작품이 지닌 사회적 가치에 비해 김말봉에 대한 평가나 연구는 매우 저조한 현실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정안나 극단 수수파보리 대표는 지난 22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김말봉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원조 페미니스트’, 여성의 지위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분”이라며 “문학사에서 지워졌지만 역사에 남은 큰일을 했다”고 말했다.

김말봉은 일제의 검열 하에 개인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일본어로만 글을 쓸 것을 강요받자 일제에 항의하는 의미로 10여 년간 절필하기도 했다. 정안나 대표는 “1930년대 활약했던 문화예술인들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잊혀지고 묻히면서 그들의 유산도 많이 사라졌다. 김말봉도 그랬다”며 안타까워했다. 공연은 7월 3일까지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 

2022 ‘산울림 고전극장’ 포스터 ⓒ소극장 산울림 제공
2022 ‘산울림 고전극장’ 포스터 ⓒ소극장 산울림 제공

2013년 시작해 올해 10회를 맞은 ‘산울림 고전극장’은 연극과 고전문학의 만남을 꾀하며 매년 젊은 연출가, 신진단체들과 소극장 산울림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획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우리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 5편을 선보인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를 시작으로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의 자전적 소설 『경희』를 원작으로 한 ‘경희를 마주하다’(극단 감동프로젝트, 7월6일~17일),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등 작품 5편을 소재로 한 ‘체험, 삶의 현장’(창작집단 아라, 7월20일~31일),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남영로의 고전을 기초로 한 ‘호호탕탕 옥루몽’(스튜디오 나나다시, 8월3일~14일), 이상의 소설을 각색한 ‘날개’(공상집단 뚱딴지, 8월17일~28일)가 무대에 오른다. 우리 문학과 시각 예술을 접목한 전시회 ‘낭만사회유사’도 열린다. 한국 문학작품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강연회, 배우·연출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 등도 마련된다. 자세한 정보와 예매 방법은 소극장 산울림(http://www.sanwoollim.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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