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정치 패러다임 180도 돌리자

17대 국회 개원을 한 달 남짓 앞둔 5월 12일 오후 2시 정동 여성신문사 회의실에선 지난 5월 초 이화리더십개발원 여성당선자 연수에서 초당적 여성연대의 밑그림을 그린 각 당의 간사 격 여성당선자 4명이 모인 특별 좌담회가 마련됐다. '여성정치세력화'를 주제로 한 좌담회엔 이오경숙(열린우리당), 김영숙(한나라당), 심상정(민주노동당), 손봉숙(민주당) 당선자가 참석, 두 시간여에 걸쳐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개진하면서 남성중심 정치권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성 당선자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을 지원해 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등 여성단체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이들은 '39'명 여성들의 원내 진입에 대한 과대평가나 포장, 기대를 경계하면서도 “이번 국회는 지난 국회와 달라도 무엇인가는 확실히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들은 무엇보다 이번 교두보를 기점으로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가깝게는 지방의회, 멀리는 18대 국회를 향해 중장기 계획을 짜 미리미리 대비하는 전략적 마인드를 강조하는 한편, 정책전문 국회를 위해 18대에선 비례대표가 최소 100석 이상 늘어나는 데 함께 연대하자고 뜻을 같이했다. 특히 여성 '30%' 진출이란 구체적 목표치를 설정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 여성당선자들은 '여성'이지만 '정치인'이기도 하기에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무조건적 연대엔 한계가 있지만, 빅 여성 이슈에 대해선 당을 초월해 소신껏 연대해야 하고, 원외로는 여성계와도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각 당에서 실현가능한 여성공약을 몇 개 끌고 나와 함께 국회에서 연대하자는 전략도 제시됐다. 여성당선자들이 최우선으로 내건 17대 국회 여성아젠더는 보육문제 해결과 호주제 폐지.

●장 소

2004년 5월 12일 여성신문사 회의실

●참가자

이오경숙 당선자(열린우리당)

김영숙 당선자(한나라당)

심상정 당선자(민주노동당)

손봉숙 당선자(민주당)

박이은경(박이): 당선을 재차 축하드린다. 여성의원 39명은 13%에 불과하지만, 첫 두 자리 수이기에 국민 대중에겐 문화적 충격일 것이다. 이제 여성정치 발전을 위한 논의와 연대를 구체화할 때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각자의 체험을 들어 18대 국회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선 꼭 제거돼야 할 장벽부터 허심탄회하게 말해 달라.

비례대표 100석·여성의원 30% 진출 등
18대 국회 목표위해선 중장기 전략 세워야

이오경숙(이오): 아직도 비례대표의 수는 부족하다. 우리로선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범개협) 활동도 있었지만, 여성계의 활동이 한층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 지역구 30% 여성할당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강제하지 못했다. 경선마저 상당히 조직선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부터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손봉숙(손): 맑은여성정치네트워크가 정당을 떠나 101명의 여성후보를 추천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비례 10석을 늘리는 데에 기여한 여성계의 노력과 성과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지역구 공천에선 여성이 3%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이는 더 이상 '요구'의 문제가 아니다. 사전에 지역구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와 함께 비례를 100석으로 늘리는 것이 18대 국회에선 꼭 이뤄져야 한다. 정책전문 국회를 위해 비례대표를 증원하는 작업을 여성들이 나서서 공동으로 했으면 한다. 또 국고보조금으로 지급되는 10% 여성정치발전기금도 사수해야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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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좌담회에서 여성연대를 재차 다짐하는 17대 국회 초선 여성당선자들. (좌측부터) 심상정, 이오경숙, 손봉숙, 김영숙 당선자.

<사진·민원기 기자>

심상정(심): 여성 9석에 대한 언론, 정계의 과대평가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39명 13%는 30%를 목표치로 볼 때 너무 미흡하다. '여성은 곧 생활정치'란 공식 때문에 지방의회면 몰라도 국회 같은 큰(?) 정치엔 여성이 어울리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남성중심적인 정당구조를 바꾸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실질적인 정치인 육성은 정당에서 돼야 하기 때문에 양성평등의 정당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이런 정치구조에서도 여성들이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우선 이번의 39명이 입증해야 한다. 상대적인 과대평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목표지향점을 정확히 던져야 여성이 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원간의 광범위한 조직화를 통해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김영숙(김): 정치행위를 남성의 전유물로 보는 인식이 강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깨끗해야 한다, 맑아야 한다, 넉넉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높아질수록 여성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을 발돋움으로 39명의 여성당선자가 탄생했고, 바로 이것이 물꼬를 텄다. 이처럼 17대 국회에서 잘된 것을 18대 국회에 고스란히 넘겨주기 위해서는 당을 초월해 여성정치인들이 연대, 후진을 기를 수 있는 제도적인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박이: 한때 당을 초월해 지방의원들이 모이는 전국여성광역의원협의회가 있었지만, 각당의 입장 한계를 넘지 못한 채 모임이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여성연대의 한계를 어디까지 보는지 궁금하다.

보육문제·호주제 폐지 최대 현안 한마음
여성계와 공조 여성의제 질적성장 이뤄야

손: '여성'이기에 무조건 연대한다고 해서 당론에 배제되는데도 연대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호주제 폐지, 보육시설 확보 등 여성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소신껏 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 여성을 위한 배려, 여성정치세력화에 연대하자는 말이다.

심: 여성정치인은 여성이기에 앞서 정치인이다. 당과 관련해 여성연대에 어느 정도 한계는 있지만, 당별 여성공약이 비슷비슷하니 주요 사안을 중심으로 연대하면 무리 없을 것이다.

박이: 그렇다면, 여성연대를 이끌어내야 하는 17대 국회 필수 여성 아젠다를 말해 보자.

이오: 호주제 폐지는 17대 초반에 여성의원 모두 힘을 모아 해내야 한다. 지방선거, 대선 등 선거가 이어지면 유권자 눈치 때문에 호주제 폐지 의지가 실종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여성정치 세력화를 통해 모성, 돌봄과 배려의 가치와 패러다임 변화가 정치권에 이식될 수 있어야 한다.

손: 저출산, 고이혼, 성비 불균형 등을 해결하고 싶다. 보통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여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심: 자식이 하나다. 동생을 낳아 달라고 해서 한 동안 곤란했다(웃음). 아이가 열 두 살이 될 때까지 고통이 심했다. 나처럼 여성들은 보육에서 대부분 돈 문제와 어른들 눈치보랴, 이리저리 안심이 안 된다. 그래서 아이를 맘 놓고 맡길 수 있게 보육시설이 국공립화돼야 한다. 그런데 육아업무가 노동부(직장탁아), 교육부(영유아교육), 여성부(보육) 등 3곳으로 나눠져 있다. 당 차원에서 이의 해결을 위해 논의하겠지만, 이들 부처에 흩어진 육아업무가 통합운영으로 일원화돼야 한다. 우선적으로 여당에서 나서줬으면 한다.

이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이제 맘 놓고 아이 낳으십시오” 했으니 아이에게 꼬리표를 달아 청와대에 다 맡기자(참석자 전원 웃음).

심: 또 법의 사각지대 안에 있는 비정규직 여성 문제도 정말 심각하다. 비정규직까지 합하면 여성들의 실제 경제활동인구는 50%가 넘지만, 문제는 가내수공업 음식업소 같은 서비스직 등 하향 평준화로 달려간다는 점이다. 여성의원들이 연대하면 이들 여성들을 위한 1차적 보호장치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원의 80%가 여성인데 고위직 결정권자는 7∼8%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다른 분야에서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래서 최소 30% 이상의 여성 괸리직 채용목표제의 실행을 위해 힘쓰고 싶다. 또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해 저비용 보육구조와 학교에서의 에듀-케어 지원책도 마련하고 싶다.

박이: 마지막으로, 여성이 이루어가는 상생의 17대 국회를 위한 각자의 다짐과 계획을 말해달라.

김: 교육현장에서 양성평등 의식을 배양하는 것이 여성정치의 굳건한 토대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를 위해 힘껏 노력할 것이다. 다행히 요즘 초등학교에선 회장반장 선거에서 여학생 당선율이 월등히 높아 전망이 낙관적이라 생각한다(웃음).

손: 지난번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모임에서 감사인사를 하면서 인사말 중 '마지막'이라는 말은 빼자고 했다. 여성문제에 관해선 앞으로도 계속 정치권과 여성계가 원내외 안팎으로 교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당을 창구로 할 것인지, 개인적으로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원외 따로, 원내 따로가 아닌 진정한 연대를 위해.

심: 17대 국회에선 여성의제의 진전이 확실히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성계는 우리 39명을 활용하고 감시하고 또 응원해주기 바란다. 여성의제의 발전을 위해 여성의원 39명을 묶어나가는 고민이 필요하며, 여성계는 시민운동 대중조직을 조직하듯 여성의원 39명을 전제로 한 네트워킹을 숙고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 같은 원내외 노력이 선행될 때 여성정치의 양적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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