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 
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 
  • 유영혁 기자
  • 승인 2022.06.20 10:19
  • 수정 2022-06-20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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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후보 스타보 페트로 물리쳐
부통령 후보, 첫 아프리카 출신 콜롬비아인 
[보고타=AP/뉴시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선 후보가 19일(현지시간) 보고타에서 투표 전 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콜롬비아 좌파 연합 '역사적 조합'의 페트로 후보가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해 오는 8월 취임한다.
[보고타=AP/뉴시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선 후보가 19일(현지시간) 보고타에서 투표 전 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콜롬비아 좌파 연합 '역사적 조합'의 페트로 후보가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해 오는 8월 취임한다.

게릴라 출신의 좌파 구스타보 페트로가 억만장자 후보를 누르고 콜롬비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CNN에 따르면 구스타보 페트로는 19일(현지시각) 치러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개표율 90%를 넘어선 가운데 50%가 조금 넘는 득표를 기록하고 있다.  

경쟁자인 부동산 업자이며 억만장자 로돌포 에르난데스(77) 후보의 득표율은 47%라고 선관위는 발표했다.

선관위는 개표가 끝난뒤 공식 집계에 따라 정식으로 페트로의 승리를 선언하겠지만, 최소 며칠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1차 투표의 승리자는 거의 언제나 결선 투표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페트로와 함께 부통령 선거에 나선 프란시아 마르케스는 최초로 부통령이 되는 아프로-콜롬비안(Afro-Colombian, 아프리카 출신 콜롬비아인)이다.

5월29일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 1차 투표에서 6명의 후보 중 과반 이상 득표한 후보가 한 명도 없어 1, 2위를 차지한 좌파 반군 출신 상원의원 구스타보 페트로와 부동산 재벌인 포퓰리즘 사업가 로돌포 에르난데스 간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1차투표에서 페트로는 40%를 약간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지만 50%에는 크게 못미쳤고, 2위를 한 에르난데스는 28%의 표를 얻었지만 당선에 필요한 50%를 넘긴 후보가 없었다.

콜롬비아 대선은 양극화 심화로 인한 불평등 확대와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만 증가 속에 치러졌다.

페트로는 세금 개혁을 포함해 경제를 크게 조정하고, 콜롬비아가 마약 카르텔 및 기타 다른 무장 단체들과 싸우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페트로는 트위터에 " 오늘은 콜롬비아 국민이 축하해야 할 날이다. 최초의 민중 승리를 마음껏 축하하게 하자. 오늘 이 나라에는 기쁨과 함께 그 처럼 많았던 오랜 고통이 함께 물밀 듯이 되살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개표 막바지 결과가 발표되자 보수파인 현 이반 두케 대통령은 페트로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고 경쟁자인 에르난데스도 즉시 패배를 인정했다.

일간 엘티엠포 등 콜롬비아 주요 언론은 "구스타보 페트로가 콜롬비아의 새 대통령"이라며 당선을 보도했다. 페트로는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오는 8월 취임하게 된다. 남미 콜롬비아의 첫 좌파 대통령이다.

페트로는 젊은 시절 좌익 게릴라 단체 'M-19'에 몸담기도 했으며, 수도 보고타 시장을 지낸 현직 상원의원이다.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로, 2010년 첫 도전에선 9%를 얻어 4위에 그쳤다. 직전 2018년 대선에서는 결선까지 올랐다가 이반 두케 현 대통령에 12%포인트 차이로 패비했다.

세 번째 도전인 이번 대선에서 페트로는 연금 개혁, 석탄·석유산업 축소, 부자 증세 등을 약속하며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했다.

콜롬비아 북부의 시골 마을 치에나가 데 오로에서 태어난 페트로는 1970년 치러진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기 위해 설립된 좌파 게릴라 운동인 4월 19일 (M-19)에 몸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 단체는 쿠바 혁명의 영향으로 1970년대에 이 지역을 휩쓸었던 이른바 제2의 게릴라 운동의 일부였다.

M19는 몸값을 노린 납치 혐의를 포함한 불법 활동과 관련이 있지만, 페트로는 지파키라 시 의회 의원까지 지내며 이른바 "거짓 민주주의"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합법적인 활동을 벌였다.

페트로는 1985년 무기를 은닉한 혐의로 경찰에 구금됐다. 며칠후 M-19는 보고타의 대법원 건물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12명의 치안판사(11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를 포함해 최소 98명이 사망했다. 페트로는 감옥에 있는 동안 무장공격에 그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부인헸다.

페트로는 군 교도소에서 18개월을 복역한 뒤 1987년에 석방됐다. 이후  무장 혁명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며 콜롬비아 정부와 평화 협상에 들어갔고 페트로는 체제안에서의 투쟁을 시작했다.

페트로는 자신을 새로운 유형의 진보주의자라고 평가했다.

페트로는 지난 4월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선되면 어떤 사유지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또 온건파를 경제장관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같은 전통적인 좌파 지도자들이 아니라 미국 의회의 코커스 같은 새로운 진보주의자들과 국제적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는 코로나사태 이후로 국민 소득이 크게 감소해 지난 해 전국민의 39%가 한 달에 89달러 (12만9천원)이하의 생계비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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