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전문가·작가·인도적지원학 박사
2024년 은퇴해 남편과 세상 돌며
중남미서 봉사하며 살 것

매년 6개월씩 떨어져 산 지 5년
‘따로 또 같이’가 부부관계 유지비결
“60대 또래들과 즐겁게 나이들고파
재미있게 사는 게 사회공헌”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홍수형 기자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홍수형 기자

‘바람의 딸’ 한비야(64)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가 ‘자발적 은퇴’를 선언했다. 오지여행가, 국제구호전문가, 인도적지원학 박사,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2024년엔 사회적 명함을 모두 반납하고, 남편과 세상을 돌면서 느리고 즐겁게 인생길을 걸어 보려 한다.

“만 65세가 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활동은 모두 접을 거예요. ‘현장을 다닐 때만 가르친다’는 원칙에 따라 강의도 안 할 거고요. 앞으로 30년은 남편 안톤(안토니우스 반 주트펀)과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재미있게 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고요. 재미있게 사는 거, 그게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난 한비야는 듣던 대로 ‘에너자이저’였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 말과 생각이 빠르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 타고난 ‘무한 긍정’의 힘으로 ‘인생 2막’을 구상 중이다. 활기찬 리듬은 그대로, 변주가 시작됐다. 이젠 솔로가 아닌 듀엣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지구 반대편으로 가 어려운 이들을 돕고, 반년씩은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따로 또 같이’ 나아가겠다는 그의 인생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홍수형 기자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홍수형 기자

한비야는 자신을 ‘인도적 지원 실천가(Humanitarian Assistance Practitioner)’라고 소개한다. “그 말을 할 때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웃었다.

2012년부터 이화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봄에는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에 대해 가르치고, 가을엔 현장을 다니면서 분주하게 지냈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 세계시민이며, 너의 안전과 행복이 나의 안전과 행복”이라고 강조해왔다. 올해 3년 만에 대면 수업을 했다. 종강을 앞둔 캠퍼스는 활기찼고 테라스에 앉아 기자와 이야기하는 사이 몇몇이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요즘 국제 개발협력 분야에서 당당히 활약하는 후배들이 늘어 너무나 든든하다”며 웃었다. 자신의 베스트셀러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보고 꿈을 키운 후배들을 ‘한비야 키즈’, “제 사회적 아이들”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

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도 내 일을 할 거예요. 그렇게 살아온 내가 자랑스러워요.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떻게 그렇게 파도를 잘 넘어가면서! 오지 여행, 긴급구호도 엄밀히 내가 최초는 아니겠지만 반드시 열어야 할 시대의 문을 두드렸다고 할까요. 만족해요. 아이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죠. 내가 좋은 엄마였을까 싶기도 해요. 이제 ‘한비야 키즈’를 잘 돌봐야죠.”

바람처럼, 불처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여행기를 두고 법적·윤리적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책은 공적 자산이니까요. 독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작가로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책을 여행 정보지가 아니라 여행하는 태도, 여행자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책으로 봐줬으면 해요. 그땐 오지 여행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치기 어린 면도 있었죠. 아는 대로 쓴 것이 그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고요. 내가 국경을 넘은 방식, 만났던 남자 이야기는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겠다 싶어요. 그러나 잘못된 비난도 있어요.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오해하고 부풀리기도 하죠. 적극적으로 반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럴 시간은 지난 것 같아요.”

그는 20~50대 후배들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겁 없이 사는 사람, 60대 후반에도 저렇게 살 수 있구나 싶은” 롤 모델로 자신을 봐주기를 바란다. 또래에게는 “인생의 후반전을 같이 재미있게, 옴팡지게 놀면서 살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 60대 여성으로 사는 거 녹록지 않죠. 우리에겐 롤 모델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다들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요. 이제 당당하게 보상받을 시간이에요. 여유가 늘어난 만큼 자기에게 집중하고, 하느님께 받은 선물 중 아직도 펴보지 않은 것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살면 좋겠어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쓰고, 잠을 줄여 글을 쓰고, 아침밥은 서서 후루룩 먹는 삶에 익숙했던 그다. 이젠 좀 느리게, 품위 있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며 사는 게 숙제다. “꽃 피는 시기는 지났어요.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아요. 지금은 열매를 따고 갈무리하는 시기죠.”

가끔 기억력이 깜빡깜빡할 땐 나이 드는 게 두렵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이렇게 변해가는 내가 좋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안톤과 밥 먹으며 함덕 바다를 보려고 어느 식당의 ‘명당자리’를 찜해뒀어요. 어쩌다 젊은 여성들에게 양보하게 됐는데요. 너무 기뻐하는 그분들을 보니까 평소처럼 얄밉지도 아쉽지도 않고 오히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는 거예요. 그날 일기에 썼어요. 이렇게 나이 드는 거라면 너무 좋다!”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남편 안톤(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여성신문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남편 안톤(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여성신문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남편 안톤(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여성신문
한비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남편 안톤(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여성신문

많은 변화가 결혼으로 시작됐다. 2017년 안톤을 반려자로 맞았다. 월드비전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초짜’ 한비야에게 매섭게 주의를 주던 네덜란드 출신 상사가 커리어 조언을 주고받는 동료로,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날 한비야는 안톤이 골라 준 푸른 재킷을 입었고, 안톤은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렸다. 기자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60세까지 혼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늘 좋기만 한 건 없어요. 한비야는 비혼주의자 아니었냐고? 인생에 정답이 있나요? 난 결혼해보니 훨씬 나다워졌어요.”

한비야-안톤 부부가 그리는 사랑의 형태는 ‘과일 칵테일’이다. “나도 그도 온전한 하나, 완전체였어요. 서로의 불완전함을 채워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과일 칵테일처럼 같은 수준으로 섞여 있어서 빛나요. 저는 솔로 플레이만 해왔는데요. 듀엣은 어렵지만 대단한 경험이에요.”

관계 유지 비결은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 336 원칙이 대표적이다.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3개월은 서울에서, 나머지 6개월은 각자 원하는 곳에서 떨어져 지낸다. 이런 ‘늦깎이 부부의 지혜’와 여생 설계 이야기를 2020년 책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로 펴냈다. 최근 영역본이 나왔다. 지난겨울 네덜란드에서 지내면서 부부가 직접 번역하고, 아마존닷컴을 통해 자비로 출판했다. 작가 한비야의 첫 영문 저서다. 앞으로도 영어로 글을 쓸 계획이다. 전 세계에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지인들이 있는 작가이니 당연한 일이다.

한비야-안톤 부부가 함께 펴낸 책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2020)과 최근 나온 영역본 『I finally found someone to walk with』. ⓒ여성신문
한비야-안톤 부부가 함께 펴낸 책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2020)과 최근 나온 영역본 『I finally found someone to walk with』. ⓒ여성신문

‘바람의 딸’ 답게 ‘인생 2막’ 계획도 스케일이 크다. “쿠바를 여행하며 작은 도움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매년 중남미에 3개월 정도 머물며 시골 마을이나 공동체를 찾아 도움을 전하려고요. 그간 조직을 통해 도왔다면, 이제 우리 주머니를 털어서 직접 도울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 악기를 기증하거나, 성당을 보수하는 등 할 일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동안 아시아, 아프리카는 많이 다녔지만 유럽을 잘 모르는데요. 앞으로 여행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글을 쓰려고요. 스페인어도 계속하고요. 70세 이후엔 또 다른 계획을 세울 거예요. SNS는 하지 않지만,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의 ‘엑기스’를 모아 책을 쓸 테니 기다려주세요.”

1958년 서울 출생. 홍익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 언론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 홍보회사 버슨 마스텔라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다 세계일주를 떠났다. 여행 경험을 책으로 펴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1년~2009년 6월까지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에서 일했다. 2010년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인도적 지원학 석사 학위를, 2019년 이화여대에서 인도적 지원 관련 연구로 국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평화를 만드는 100인 등에 선정됐다. 2004년 'YWCA 젊은 지도자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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