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안내 표지다. ⓒ여성신문<br>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안내 표지 ⓒ여성신문 

‘공공언어’를 처음 접한 건 대략 15년 전입니다. 서울의 한 자치단체의 공공문장을 감수했는데요, 국가적·사회적으로 공공언어에 막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연히 ‘공공언어’란 개념이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지요. 물론 이전에 공공으로 쓰이는 언어가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언어나 법률언어와 같은 전문적인 언어 외에도 동사무소에 비치된 민원서류나 학교에서 보내오는 공문, 공원에 세워진 안내판 등에 적힌 무수한 글이 당연히 있었지요. 다만 이런 글을 묶어 ‘공공언어’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공공언어를 감수하며 놀랐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처음엔 여러 종류의 문서를 교정·교열하는 일로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문서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공원이나 약수터 등에 설치된 여러 종류의 안내판, 도시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 등에 쓰인 글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외환위기 이후 올바른 우리말 쓰기가 곳곳에서 ‘포기’되며 언론 기사도 교열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 마당에 일회성의 플래카드 글과 표지판의 ‘입산 금지’ 등과 같은 글을 세금을 들여 감수하다니 놀랄 수밖에요.

그 이후로 공공언어와 관련해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법규도 마련됐고, 공무원들에겐 ‘쉬운 글쓰기’가 의무가 됐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공공언어를 개선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고요. 여러 방면에서 공공언어, 더 나아가 우리 말글을 옳게 사용하려 무던히 애써온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국어계의 유물과도 같은 ‘-읍니다’와 같은 표현은 이제 더는 공공언어에서 볼 수 없지요.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관심을 기울여온 시간에 비해 올바른 글쓰기는 아직 요원해 보이니까요. 맞춤법 검사기만 돌려봐도 거를 수 있는 오류가 심심치 않게 보이고, 국어사전에 등재된 외래어를 아직도 틀리게 적고 있습니다. 법으로 정한 미터법을 정부 기관조차 제대로 쓰고 있지 않고요. 국민을 겁박하듯 쓰인 문구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공공언어를 작성하는 당사자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문장력은 차치하고 맞춤법은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광범위한 데다 예외 규정이 많고, 띄어쓰기는 또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사전은 때때로 수정되어 어제는 틀렸던 말이 오늘은 맞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언어를 전문으로 다루지 않는 공무원과 일반인이 맞춤법의 달인이 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혹여 맞춤법에 능숙해진다 해도 쉽고 올바른 글쓰기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올바른 단어 사용이 쉽지 않아서지요. 예를 들면 주인공과 장본인 같은 것입니다. 의미는 비슷하나 주인공은 긍정적인 의미로, 장본인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요. 문장의 호응도 중요합니다. 앞에 어떤 말이 오면 거기에 응하는 말이 따라와야 하는데요, ‘결코’가 오면 부정, ‘제발’이 오면 청원, ‘아마’가 오면 추측의 말이 서술어에 와야 합니다. ‘나는 결코 이 일을 할 수 있어’와 같은 문장은 쓸 수 없죠.

맞춤법 못지않게 언어의 감수성도 중요합니다. 학부형·녹색어머니회와 같은 차별적 언어에 예민해야 합니다. 학부형은 남성이 기본 값인 말로, 학생의 보호자는 남자여야 한다는 차별적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녹색어머니회는 봉사의 주체를 어머니에 한정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드러내지요. 공급자(官) 중심의 언어와 사용자 혹은 수용자(국민) 중심의 언어를 구분하는 언어 감수성도 필요합니다. 공급자 언어의 쉬운 예로 ‘분리수거’가 있습니다. 분리수거는 그야말로 공급자 언어입니다. 사용자 처지에서는 ‘배출’을 하는 것이지 ‘수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용자 언어는 팬데믹 이후 비대면 시스템이 빠르게 도입되며 더욱 중요해졌는데요, 동사무소와 세무서만 가더라도 무인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분리수거와 같은 공급자 언어로 도배돼 있다면 어떨까요? 사용자인 국민들이 시스템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쉽고 올바른 공공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주변에서 흔히 쓰이는 공공언어를 세심하게 짚어보며 위 내용들을 더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필자: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한국일보·아시아경제·여성신문 등에서 교열기자로 일하다 최근엔 종편으로 자리를 옮겨 어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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