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지난 4월 초였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와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노인복지관 퇴직 후,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으로 3년 반 동안 혼자 일하며 나름대로 일자리를 찾아내고 만들어온 나를 방송에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전의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 경력도 감안한 것이라며 아나운서에서 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그리고 이제는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내가 '중년 여성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주제에 딱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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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내가 비디오형이 아니라는 것과 하는 일이 주로 강의나 원고 쓰기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딱히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며 고사하던 끝에, 노인복지 분야의 새로운 활동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결국 응낙을 했다.

노인대학에서 강의하는 장면에서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모습, 출판사에서 새로운 책에 대해 기획회의를 하는 것까지 6mm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기기 시작했다. 오래 전 아나운서 시절의 빛바랜 사진들도 불빛 앞에 드러났고, 내가 속한 '어르신사랑연구모임' 회원들과의 토론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실 내가 꼭 찍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직업활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웬 아버님들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두 아버님을 자원봉사의 세계로 안내해 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국어교사이신 친정아버지와 학원 일본어 강사 출신이신 시아버지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자원이었기에 내가 일하던 노인복지관에 오셔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시도록 권유했고, 두 분은 바쁜 딸과 며느리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첫걸음을 하셨다. 출석부 정리라든가 인원통계 같은 사무보조로 시작해 시간이 흐르면서 두 분 모두 경험을 살려 한글교실과 일본어교실 강사로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셨고, 그러면서 '사돈 봉사팀'이라는 이름을 얻어 여러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고 어느 해인가는 자원봉사 표창도 받으셨다. 머리 하얀 두 분의 사돈이, 바로 나의 두 아버지가 나란히 단상에 올라 상을 받으실 때의 그 감격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은 각기 다른 복지관 두 곳씩을 정해 한글교실과 자서전교실, 일본어교실의 강사로 봉사를 하고 계신다. 자원봉사는 두 분의 노년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바꿔놓았다.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신 친정아버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았으니 나도 힘닿는 데까지 다른 사람들을 돕다 가겠다'고 하시고, 평소 말씀이 거의 없으신 시아버지는 부드럽고 예의바른 선생님으로 노인대학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계신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면서 준비하고, 몸을 움직여 강의하러 다니고, 동년배들과 만나 소통하고…. 이보다 좋은 노년이 또 어디에 있을까.

결국 내 소망대로 나는 카메라 앞에 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가운 말 한마디 못 건네고, 따뜻한 진지 한번 해드리지 못해도 두 분의 사랑은 넘치고 넘쳤으며, 그 사랑이 내게만이 아니라 자원봉사로 만나는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 믿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자원봉사를 통해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계신 두 아버지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도 정말 멋지고 아름다웠다. 친정 아버지는 올해 82세, 시아버지는 올해 77세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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