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문학상’ 부커상 수상 작가
4일 서울국제도서전 강연

제주 4·3 다룬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지난해 출간
“인간이란 거대한 수수께끼...
역사적으로 절멸·학살은 혐오의 문제
우리는 타인의 고통 느끼는 존재
언어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어
살아있는 한 희망이…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강 작가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여성신문
한강 작가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여성신문

제주 4·3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 가부장제... 한강의 소설은 ‘폭력의 역사’를 비춘다. 혐오하면서도 사랑하며 파괴하고 되살리는, 이토록 모순적인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냐’ 묻는다.

“어릴 적 제게 인간이란 거대한 수수께끼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첩과 (19세기 말 백인에 의한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다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를 읽으면서 인간은 무섭다, 나도 인간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근원적인 공포와 의문으로 남았죠.”

한강 작가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이날은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제주 4·3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문학동네) ⓒ문학동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문학동네) ⓒ문학동네
소년이 온다 (한강/창비) ⓒ창비
소년이 온다 (한강/창비) ⓒ창비

『소년이 온다』는 “너무나 모순된 ‘인간의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영역판 제목은 『Human Acts』(인간적 행위). 소설엔 지나가는 신혼부부를 곤봉으로 구타하는 공수부대도, 부상당한 시위대를 위해 헌혈하려고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도 나온다. 모두 ‘인간의 행위’이니 적절한 제목이라고 봤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제주 4·3 사건, 제2차 세계대전, 보스니아 내전 중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등 전쟁과 국가폭력의 역사를 공부했다. 4·3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아주 가깝게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다. 20대 때 제주도에서 잠시 셋방살이를 하며 알게 된 할머니가 어느 날 담벼락을 가리키며 “여기서 사람들이 4·3 때 총 맞아 죽었다”고 말했을 때다.

“절멸, 학살은 혐오의 문제와 닿아있어요. 혐오는 아주 가까이,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 있습니다.”

“절망할 때도 많지만 (혐오를) 마주하고 질문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가 꾸준히 인간이 자행한 폭력과 그 상흔에 관해 쓰는 이유다.

‘왜 직접 겪지 않은 5.18을 다뤘나’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니까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를 통해 아주 깊이 내려가서 뭔가를 말하면, 읽는 사람이 같이 깊이 내려와서 읽어준다고 믿어요. 그 믿음이 없다면 쓸 수 없어요. 문학이 존재할 수 없어요. 우리가 연결될 수도 없고요. 내가 속한 작은 테두리 안에서만 글을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소년이 온다』 집필 과정은 “압도적인 고통”이었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고백한 적 있다. “제게도 독자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소설이었어요. 결국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이 싫다면서도 인간을 믿고 사랑하니까 무너져내리고 찢기는 아픔을 느끼는 거죠.”

그러면 “사랑에 대해 한번 써봐야겠다” 마음먹고 내놓은 소설이 『작별하지 않는다』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남겨둔 이야기를 붙잡고 있다가 수년 만에 빛을 본 작품이다. 제목은 “애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결단을 담아 지었다.” 한강 작가는 “어떤 고통은 지극한 사랑을 증거한다. 또는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스며 나온다. 사랑과 고통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차기작을 쓰고 있다. 해외 독자들과도 만난다. 올가을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르웨이 등 해외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영역판 제목 후보는 『We Do Not Part』다.

“힘들 때는 어떻게 글을 쓰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우울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실낱같은 희망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생명은 언제나 빛을 원하니까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싸우며, 기어가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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