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은 단순·침묵·느림·나눔·웃음...77세 조안 리의 인생 2막
좋은 삶은 단순·침묵·느림·나눔·웃음...77세 조안 리의 인생 2막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6.06 13:25
  • 수정 2022-06-09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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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지지 않고 전 세계 누벼
한국 첫 홍보사 스타커뮤니케이션 창립
세계 최대 PR사 버슨마스텔러 한국지사장
사별 후 홀로 두 딸 키워
“도전하라, 네 뿌리를 기억하라” 가르쳐
후배들에겐 “안주하지 말라”
77세 희수를 맞은 조안 리가 회고록 『감사』(Gratitude)를 펴냈다. 그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77세 희수를 맞은 조안 리가 회고록 『감사』(Gratitude)를 펴냈다. 그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77세 희수를 맞은 조안 리가 회고록 『감사』(Gratitude)를 펴냈다. 거침없는 도전과 모험,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노년을 맞는 자세와 삶의 교훈을 284쪽 분량으로 압축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그를 만났다.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선 조안 리가 지인들, 동문들과 감격의 인사를 나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 리더가 “파란만장한 인생과 싸우고, 팬데믹까지 이겨내고” 10년 만에 연 잔치다. 우아한 패션, 꼿꼿한 자세, 나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 행사 직전까지 입원해 있던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조동성 경인방송 회장은 “아름다우면서도 아련했다”고 했다. 작가 한비야 씨는 “조안 리는 제게 영원한 사장님”, “어느 상황에서도 당당한 사장님”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여성신문이 '감사의 77년 조안리와의 동행'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여성신문이 '감사의 77년 조안리와의 동행'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여성신문이 '감사의 77년 조안리와의 동행'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여성신문이 '감사의 77년 조안리와의 동행'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조안 리의 저서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1995) ⓒ문예당
조안 리의 저서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1995) ⓒ문예당

 

조안 리의 저서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1994) ⓒ문예당
조안 리의 저서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1994) ⓒ문예당

조안 리는 일하는 여성들의 롤 모델이자 ‘든든한 뒷배’였다. 국내 첫 홍보 전문회사 스타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여러 국제 박람회·회의를 한국에서 열고, 전투기도 팔며 독보적인 사업을 일궜다. 담대한 협상력과 수완, 뛰어난 영어 실력에 콧대 높은 클라이언트들도 혀를 내둘렀다. 세계 최대 PR 기업 버슨마스텔러 한국지사장, 전문직 여성들의 국제봉사단체 존타(ZONTA)에서 한국 여성 최초 아시아 지역 총재, 여성신문사 이사도 역임했다.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던 전문직 여성들을 고용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과 권익 향상을 위해 힘썼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로맨스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서강대 재학 시절, 학장이던 고 케네스 킬로렌(한국명 길로연) 신부와 스물여섯 나이 차를 극복하고 로마 교황청 허락을 받아 결혼했다. 자신의 사랑과 일 이야기를 쓴 책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1994)은 밀리언셀러가 됐다. 소문난 멋쟁이다. 전형적인 여성미를 벗어난 수트 차림을 멋지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 최초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무대에도 섰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던 때 세상은 남자들 차지였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탄력받기 시작하던 1960~70년대에도 교육 기회조차 못 얻는 여성, 아내가 일하는 걸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집에만 있는 여성이 많았다. ‘여자가 뭘 할 수 있겠냐’는 편견도 심했다. 더는 여성의 삶이 주부에 머무르지 않던 1980~1990년대, 공고한 여성혐오의 벽에 부딪힌 여성들에게 롤 모델이 절실했던 시절, 조안 리는 ‘인플루언서’였고, ‘불편한 존재’였고, 하나의 반짝이는 별이었다. 

‘최초’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내겐 롤 모델이 없었어요. 내 생활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책임감도 있었고요.”

후배 여성들에게는 ‘두려워하지 말라, 안주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리 때보다 여건은 훨씬 좋아졌는데 아직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것 같다. 안주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정신적 유리천장을 부숴야 한다”고도 했다. 맨땅에 헤딩하며 없던 길을 내온 그다운 조언이다. “미국에서 보니 이민 가족의 90%는 여자가 먹여 살리더군요. 한국 여성들은 어디에 갖다 놔도 괜찮아요. 하하하.”

큰딸 안젤라 킬로렌 CJ E&M 아메리카 대표는 이날 출판기념회 축사에서 “어머니의 첫 책 출간으로부터 30년이 지났는데 아직 우리에게 그 책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좀 더 돌격하자. 완벽주의를 버리자는 메시지가 사회 압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MZ세대들한테는 꼭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77세 희수를 맞은 조안 리가 회고록 『감사』(Gratitude)를 펴냈다.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두 딸, 안젤라 킬로렌 CJ E&M 아메리카 대표와 에이미 킬로렌 씨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77세 희수를 맞은 조안 리가 회고록 『감사』(Gratitude)를 펴냈다.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두 딸, 안젤라 킬로렌 CJ E&M 아메리카 대표와 에이미 킬로렌 씨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후 조안 리가 두 딸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후 조안 리가 두 딸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엄마 조안 리’는 딸들의 자부심이다.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길을 연 개척자, 선구자셨죠.”(큰딸 안젤라) 조안 리는 “일에 바빠 딸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게 후회스럽다”지만, 딸들은 엄마를 원망한 적 없다고, 엄마의 일과 삶을 이해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조안 리는 마흔에 갑작스럽게 남편을 사별하고 두 딸을 홀로 키웠다. 사업가로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릴 때였다. 바쁜 엄마에게 투정 부리기는커녕, 딸들은 알아서 척척 인생 진로를 설계했다. 둘 다 아이비리그를 나와 국제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큰딸 안젤라는 CJ E&M 아메리카 대표로서 K팝, 한국 드라마·영화·음식 등 문화콘텐츠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둘째 에이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둘 다 ‘워킹맘’이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학교에 왔는데 사람들이 파도처럼 갈라졌어요. ‘직장인 엄마’가 많지 않았으니 달라 보였겠죠. 자랑스러웠어요. (...) 엄마와 저처럼 결혼·육아·일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들이 드물어요.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큰딸 안젤라가 말했다. 출판기념회 축사에서도 어머니를 향해 “낙관주의, ’하면 된다‘는 뚝심으로 무지의 어둠 속으로 두려움 없이 뛰어든 삶의 기록”, “어머니는 제게 선물 같은 사랑을 주시며 저와 제 또래의 여성들에게 롤 모델이 됐다. 항상 활기찬 저의 인생은 어머니의 모델링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작은딸 에이미는 엄마의 회고록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도 서운한 적 없었다. 엄마는 일하는 여자였고, 아직도 그렇다.”

안젤라는 어머니에게 두려움 없는 도전 정신과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가는 뚝심을 배웠다고 했다. 단 추구하는 바는 다르다. “엄마는 ‘네 사업을 하라’ 하시지만, 저는 큰 조직의 일원이 돼 협업하는 게 더 좋아요. 혼자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제 프라이버시도 중요하고요.”

딸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로이 구사한다. ‘한국인은 한국어를 쓰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네 자신에게 하나의 도구를 더 주는 것’이라는 조안 리의 교육 방침 덕이다. “사람은 자기 뿌리를 알고 지킬 때 대접받지요.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는데 누가 나를 존경해 주겠어요?” 그래서 외국인학교에 보냈던 딸들을 다시 이화여대 사범대 부속 초등학교로 보냈다. 중학교 과정부터는 미국에서 공부한 딸들이 방학을 맞아 돌아오면, 용돈을 주는 대가로 회사에 불러 한-영 통번역을 시키기도 했다.

조안 리의 회고록 『감사』(Gratitude).  ⓒ여성신문사
조안 리의 회고록 『감사』(Gratitude). ⓒ여성신문사

77년 삶의 ‘전환’ 일으킨 치유 단어 ‘5S’
단순·침묵·느림·나눔·웃음

요즘 조안 리는 ‘좋은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 회고록에서도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들려줬다. 2000년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고, 2010년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예기치 못한 병에 우울증까지 왔다. 회사 일은 후배들에게 넘기고 2012년 미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지난 10년간 명상, 요가, 독서 등에 집중하며 삶을 돌아봤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나라는 존재의 본질적 속성 앞에 겸허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야망에 가득 찼던 젊은 시절 나의 모토는 ‘내 삶의 주인은 나!’였다.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반항적으로, 뜻밖의 장애물과 장벽은 그저 도전하여 극복할 방해로만 여겼다. 운 좋게도 사업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나, 남편과 어머니를 잃은 것을 부정하고 싸우려던 것은 아무 소용없는 헛된 짓이었다. 결국 죽음과는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것 뿐이었다. 마침내 손을 내리고 인생의 파도들을 밀려오는 대로 맞이하는 것을 배웠다.” (『감사』 중)

불안과 우울의 시대, 그래도 살아 있음으로써 얻는 기쁨과 희망을 말한다. 단순(simplicity), 침묵(silence), 느림(slow), 나눔(share), 웃음(smile)을 ‘치유’의 단어로 꼽았다. 세상사가 복잡할수록 단순한 삶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고, 침묵은 금이며, 속도를 늦추고 삶의 리듬을 즐겨야 한다고 했다. 나눌수록 우리는 풍요로워지며, 웃는 습관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얘기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결혼”, 아쉬운 것은 “스쿠버다이빙을 못 해본 것”이란다. “마지막까지도 인생을 충실하게 살고, 즐기고 떠나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나눔’과 ‘감사’로 가득한 조안 리의 ‘인생 2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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