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파업'…정말 아이 낳기 싫어 안 낳는 걸까

'무자녀' 증가, 가부장제의 여성성·모성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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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39세의 산모라, 사뭇 감격스러운데요!”

지난해 3월 6년 만에 첫아이이자 마지막(?) 아이가 될 가능성이 큰 아이를 출산한 후 병실을 찾은 한 지인이 침대 상단에 붙여놓은 알루미늄 판의 환자 기록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낸 탄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4인실 산모들 중 (나를 제외하고)가장 나이가 많아 노산이라 걱정했던 산모 나이가 겨우 30대 초반이었다.

직업이 페미니스트 저널 기자인지라 지인들은 내가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한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자기발전을 위해 '무자식 상팔자'를 선택한 이기적 여성이란 선입관도 있었나 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정말 아이 낳을 시간이 없었다… 일주일에 태반을 차지하는 야근, 선배기자로서 가중되는 책무감과 스트레스, 리더십에 대한 고민… 게다가 근래 몇 년간은 '다이내믹 코리아'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 격동기였다. 잠자면서도, 새벽에 눈을 떠서도, 심지어 휴일조차도 일에 대한 강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남편과의 사적 시간에도 신문사 일이 종종 떠오를 정도니….

결혼 초기엔 남편도 내 상황을 이해하는 터라 만혼(결혼 당시 난 33세, 남편은 34세였다)임에도 불구하고 아이 채근을 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아이 문제를 꺼내기 시작한 것은 일시적으로 출산율을 잠깐 높여놓을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던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 붐 이후부터였다. 아마 아이 낳기가 일종의 대형 이벤트화 된 사회 풍조가 계기가 돼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혹은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가 됐나 보다.

그래서 나도 남편과 보조를 맞춰 산부인과 검사를 받기도 하면서 아이 낳기에 대한 의례적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재충전을 이유로 잠시 직장을 쉬게 됐다. 지인들은 “이 때야말로 아이를 낳을 절호의 기회”라고 입을 모으며 임신을 부추겼다. 난 은연중 강압적인 남편의 태도에 못 이기는 척하며 산부인과를 규칙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별 열의를 보이지 않는 내 태도에 좀 갑갑했던 담당 의사는 “당신이 아이가 없는 채 나이 오십이 돼서도 정말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라”고 반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인즉, 신체에 별 이상이 없어도 나이 사십을 넘기면 그만큼 임신의 확률은 줄어들고, 시험관 아기 등 아무리 첨단과학을 동원해도 여성 몸엔 출산의 생명시계가 있는 법이라는 것. 그래서 담당의사는 본격적으로 내게 나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 것을 권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푹 쉬려고 작정했던 난, 그렇게 무작정 쉬다간 의사의 유혹에 말려 들어가 시험과 아기를 낳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쫓겨 얼마 지나지 않아 급히 직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멋진 바캉스를 끝내고 돌아온 어느 날 아무래도 조짐이 이상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의사는 내가 임신한 지 무려 3개월이 다돼 온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려줬다. 결혼 5년이 넘도록 임신의 기미조차 느낀 적이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게 의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꽤 오랜 세월 동안 산부인과 전문의로 살아왔지만, 시험관 아기가 드물지 않은 요즘도 아이를 갖는 일은 확실히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라며.

성공하려면 아이 낳지 마라' 주술 거는 사회

40세에 아이 첫 돌을 맞이할 정도로 노산을 하기까지의 개인적 과정을 풀어내느라 서론이 좀 길어졌다. 이토록 사적 경험을 세밀히 풀어내는 것은, 세계 최저의 출산율(여성이 일생 낳는 자녀 총수) '1.17'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여성들의 '출산파업'(출산 스트라이크)은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반기나 복수심처럼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의도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심리학자 메들린 케이의 <무자녀 혁명: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북키앙)는 아이 없는 여성들의 내밀한 고백을 통해 어쩌다 보니 자녀 없이 살게 된 '우연적 무자녀'(happen-stance) 여성이 상상 외로 많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아이가 없는 상태를 즐기는 '선택적 무자녀'(childfree)와 아이가 없음으로 인해 위축되는 '운명적 무자녀'(childless) 등 기존 관념처럼 아이 없는 여성에 대한 설명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반증이다.

재작년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여성 경제학자 실비아 앤 휼렛의 책 <삶을 창조하기:전문직 여성과 아이 찾기>에 따르면, 직원 5000명 이상 대기업 여성간부 42%가,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 여성 49%가 아이가 없다. 그런데 이들 성공한 여성들 중 14%만이 자발적(?) 피임을 선택했을 뿐, 대다수는 '일에 치여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임이 됐다고 한다. 어쩌면 무한 경쟁시대 “성공한 여성일수록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사회적 주술이 출산파업의 간접적 요인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 자신도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 한편으론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착잡했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멀어지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비록 신체적으론 별 무리가 없더라도 임신부의 차림새가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막연한 부담감을 느끼게 하거나, '여성'임을 너무나 확연히 인식하게 할 거라 생각하니 전문직 여성으로서 자긍심에도 금이 갔다. 게다가 직장에서 생산력이 갑자기 절반으로 뚝 떨어진, 한동안 유예기간을 가져야 하는 인력으로 간주될 것을 생각하니, 임신했다는 사실이 그토록 송구스러울 수 없었다. 직장이란 조직이 나에게 그런 피해의식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경쟁'과 '생존' 논리에 임신의 기쁨을 희생시켰던 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저출산율 주요 원인으로 급격한 결혼관 변화로 인한 미혼율 증가와 만혼 현상을 든다. 여성들에게 결혼은 이미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된 지 오래다.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광폭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요즘 여성들에게 기존 가족제도에 충실히 헌신하며 자신의 삶을 가족의 삶 속에 종속시켜버린 채 체념해버린 어머니의 삶은 죽어도 닮고 싶지 않은 선례다. 오죽 하면 '난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요'란 카피가 유행했을까. 그리고 그 엄마와 닮은 꼴의 삶의 길목엔 '자식'이란 존재가 엄연히 버티고 서 있다.

출산을 위해 여성이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

여성 개인에게 과연 출산과 그로 인한 아이의 탄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일전에 계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평균 연령 19.8세의 서울 시내 여대생 630여 명을 대상으로 출산과 육아의식을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여대생들은 '결혼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는다'에 42.7%만 동의를 표했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엔 66.6%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대생들의 출산기피 이유론 단연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가 1위로 꼽혔고, 그 다음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육아책임이 두렵다'였다. 만약 출산을 하게 된다면 그 전제조건으론 '남성의 육아 동참'이 1위로 꼽혔고, 그 뒤를 '보육시설의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 '국가의 적극적 정책 개입' 등이 이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가 출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통계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70대 여성이 6명의 자녀를 키우는데 소요된 시간은 40년인데 반해 30대 여성이 2명의 자녀를 키우는 데 소요될 시간은 무려 28년이 걸릴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자녀 양육과 교육에 소용되는 비용과 노력은 이처럼 자녀 수에 오히려 반비례한다.

결국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남성들의 육아 협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에)제도적 지원책으로 출산에 따른 각 개인의 삶의 희생을 최소화 하는 것”이 출산율 추락 현상을 멈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일 것이다.

한편으론, '무자녀 혁명'을 예고하는 케인의 말처럼 “아이가 있든 없든 여성이 스스로 완전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성'과 '모성'을 성공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무자녀' 여성의 증가는 아내, 엄마 등 기존 가부장제 구조에서 여성역할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뜻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더불어 100% 순전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정이 좀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박이은경 기자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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