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 데릴며느리가 대 잇는 별세계 재산, 사회적 지위 등 가족파워 모계계승

성과 재산을 어머니에게서 딸로 상속하는 모계사회. 여자가 가장 구실을 하며, 맏딸이 집안의 가장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남자가 대를 잇도록 데릴사위를 얻었지만 아시아의 모계사회에서는 딸이 없으면, 데릴며느리를 얻어 여자가 대를 잇도록 한다. 남자들이 시집살이를 살고, 여자들의 허락 없이 본가에 갈 수 없기에 오히려 남자들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야말로 '여인천하'라고 할 수 있는, 현존하는 아시아의 모계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여성이 중심에 놓인 가족 구도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중국 모쒀족 - 결혼·이혼으로부터 자유 만끽

중국의 모쒀족은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따로 두지 않았다. 철저하게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만의 남녀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부일처제와는 다른 방식의 '프리섹스'가 이뤄진다. 청춘 남녀가 마을의 축제나 잔치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으면 여자(아샤)는 밤에 남자(아주)가 자신의 처소로 올 수 있도록 대문이나 창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남자는 해가 저물기를 기다려 여자 집에 들어간다. 긴 밤을 보낸 남자는 동이 틀 무렵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집안을 위해 일한다. 이렇게 두 남녀가 각각 자기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밤에만 만나는 일종의 혼인을 주혼(走婚) 또는 아샤혼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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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모쒀족의 한 가족, 모계로 구성된 대가족은 어머니가 딸에게 성과 재산을 상속한다.

<사진·백지순>

모쒀족의 여자가 야사혼을 치를 수 있는 나이는 13살이지만 대부분 십대 후반부터 관계를 시작한다. 만일 여자의 마음이 변하면 밤에 문을 잠궈 남자가 자기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상대를 찾는다. 인기 있는 여자는 평생 수십 명의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중년에 접어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의 집에 들어간다. 모쒀족 안에서 이혼의 아픔은 없다. 아샤혼 관계에 있던 남녀가 헤어져도 특별히 문제는 없다. 그들의 아이는 이제까지 어머니의 집에서 나고 자라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 등의 정신적 고통은 겪지 않는다.

베트남 에데족 - '시집살이' 부조리 고스란히 남자에게

베트남 정부에서 소수민족을 정착시키기 위해 만든 아밍옌 마을 에데족의 결혼식은 '남편을 사오는 잔치'다. 결혼은 신부의 청혼으로부터 시작된다. 결혼 승낙이 떨어진 뒤 신부는 6개월 동안 신랑의 집에서 지낸다. 사위를 데려오기 위해 신부의 부모는 '밧응모'라는 일종의 지참금을 지불하고, 신랑은 신부쪽 식구들이 자신을 데려가길 초조하게 기다린다.

결혼식은 신랑을 데려가기 위해 신부가 여자친척들의 행렬과 함께 신랑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신부는 신랑 부모님께 인사를 한 뒤 신랑과 자신들이 보금자리가 될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이끌어 신랑에게 넘기는 우리나라 결혼식 풍경과 완전히 딴 세상이다.

에데족 남자들은 부인이 허락하질 않아 자신의 '친정집'에 가지 못한다고 투덜거리고, 심지어 집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못 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겪은 시집살이의 고통이 에데족 안에서는 남자들의 몫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미낭까바우족 - 재산상속권은 딸들 차지

미낭까바우족은 나이가 많고 현명한 여자를 '분도깜둥'이라고 부르는데, 집안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존경받는 어머니로 대접받는다. 보통 '분도깜둥'은 그녀의 자식뿐 아니라 가족과 친족들의 교육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미낭까바우족 청년들에게는 타지로 나가 돈을 벌어오는 '머란따우' 풍습이 있다. 아들에게는 재산이 상속되지 않음으로써 타지에 가서 돈을 벌어 와야 하는 것이다. 독립 후 초대 부통령을 지낸 하타이도 '머란따우'로 가장 유명해진 인물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낭까바우족 남자들은 타지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아예 그곳에서 정착해 우리가 모계사회를 꿈꾸는 것처럼 부계사회를 이루는 꿈을 꾸고 있다.

인도의 나야르 카스트 - 사회적 지위는 모계계승

인도 서남부 케랄라주에 사는 나야르 카스트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모계사회였다. 그런데 1956년부터 시작된 수정법(MYSURE ALIYA SANTANA Amendment Act)에 따라 재산을 누이의 자식에게 상속하는 법이 개정돼 자기 자식에게 직접 상속하는 부계상속 체제로 바뀌었다. 47년 전 바뀐 법에 의해 모계상속은 끝났지만,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인도 인구 80% 이상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힌두교와 토착종교가 결합한 '떼이얌'이라는 굿은 모계사회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떼이얌 행사를 치르는 사원에 가면 그 사원을 유지하고 있는 '가야가뿌라'라고 불리는 집안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 사원의 대표는 가야가뿌라 집안의 장녀이고, 모계로 지위가 이어진다. 집안의 장녀들은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도 떼이얌 행사를 할 때 사원에 집결해 무당에게 쌀을 뿌리는 '아리이들'이라는 의식을 주도한다. 그리고 한 문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자를 '따라와땀마'라고 부르는데, 따라와땀마는 가장 나이 많은 어머니 혹은 외할머니가 문중에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며, 문중 사람들은 그녀의 의견을 따른다.

필자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자주 애용했던 중국집의 나야르 지배인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부인의 학비를 대고 있었다. 자신은 고등학교만 졸업했는데 부인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 그러면서 “이것이 다 자식을 똑똑하기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아직도 모계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나야르 카스트에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조유미 객원기자

cym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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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백지순 프로필

1991년 연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김수남 사진작업실에서 1992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인도를 1992년부터 약 10여 년 동안 답사하며, 모계사회 및 아시아 소수민족의 생활과 음식을 카메라 렌즈에 담고 있다. 1997년부터 3년간 계간 <전통과 현대> 편집부 사진을 담당했고, 2001∼2002년 서울예술대학에서 교편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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