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균열 내는 모권가족으로 간다

장모시대, 마마걸 등 핑크빛 환상 이면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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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인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박모씨(32, 경기도 고양시)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매주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가며 방문한다. 친정 근처에 집을 얻어 주중에는 어머니가 1살 된 아이를 봐주고, 시댁에는 아이를 보여드리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른다. 친정 식구가 더 많은 탓에 남편도 시댁에 가기만을 고집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처가에 어울리려는 분위기다. 박씨는 “아이의 양육 때문인지 친정을 더 찾게 되고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고 말한다.

“여자는 한번 시집가면 남자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와 “화장실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호주제 폐지, 여성의 경제력, 양성평등 문화 확산, 육아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 집안을 중심으로 한 모계 가족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여성부가 한국여성개발원에 의뢰해 전국 3500가구 9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3 전국가족조사'에 따르면 아내의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18.1%로 남편의 부모에게 지원을 받는다는 11.1%보다 높게 나타났다. 정서적 지원 또한 아내 부모로부터가 12.1%, 남편 부모로부터가 3.7%로 나와 아내의 부모에게 더 큰 정서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모계 가족에서 감성, 돌봄, 상호 배려,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읽는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는 “남편 쪽 가족은 의무, 형식적 내조, 보상체계와 연결돼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반면 여성 라인은 감성적, 정서적 돌봄을 받고 경제적 지원도 의무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계 친족과의 교류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여성학자 조주은씨(37, 고려대 보건대학 여성학 강사)는 “시댁에 잘하기 위해 친정 식구들이 와서 음식을 해주거나 아이를 친정에서 봐주는 식으로 모계의 측면이 부계가족 제도를 강화시키는 도구 역할을 해선 안 된다”고 못박는다. 현상적으로 모계가족이 드러나지만 성별 권력관계를 보면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 실제 여성이 많은 집에선 남자들이 더 가사노동을 안 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기존 부권사회의 부조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균열을 내지 않는 이상 모계는 모권이 아니며 대안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부계가족에서 나타나는 권위적, 제도적인 모습이 모계가족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서구처럼 사위-장모 갈등이 나타나 99년부터 가정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이러한 내용의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아이를 적게 낳는 시대에 핏줄에 대한 어머니들의 집착이 딸에게로 향해져 일명 '마마걸'이 양산되고 있다. 이는 일부 부유층 가족에서 기존의 가부장적인 방식과 다를 바 없이 부와 힘이 엄마에서 딸로 전이되는 모습을 보여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 현재의 가족 지형도를 고민하는 책 <누구와 살 것인가>(또하나의문화)에 필자로 참여했던 조형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등은 “'핏줄 중심'의 가족은 전통적인 부계혈통 가족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며 “건강한 가족관계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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