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리, 77년 삶의 ‘전환’ 일으킨 치유 단어 ‘5S’
조안 리, 77년 삶의 ‘전환’ 일으킨 치유 단어 ‘5S’
  • 박선이 기자
  • 승인 2022.05.27 18:20
  • 수정 2022-05-27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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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PR 업계 개척자이자 작가 조안 리
77년의 삶 담은 회고록 『감사』 펴내
게티 빌라에서 앤젤라 가족과 함께 ⓒ조안 리
게티 빌라에서 앤젤라 가족과 함께 ⓒ조안 리

“야망에 가득찼던 젊은 시절 나의 모토는 '내 삶의 주인은 나!'였다.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반항적으로, 뜻밖의 장애물과 장벽은 그저 도전하여 극복할 방해로만 여겼다. 운 좋게도 사업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나, 남편과 어머니를 잃은 것을 부정하고 싸우려던 것은 아무 소용없는 헛된 짓이었다. 결국 죽음과는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것 뿐이었다. 마침내 손을 내리고 인생의 파도들을 밀려오는대로 맞이하는 것을 배웠다.“ (『감사』 p277)

한국 최초의 P.R.전문회사 '스타 커뮤니케이션' 창립자이자 자신의 일과 사랑, 삶을 진솔하게 드러낸 자서전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으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던 조안 리(77)씨가 회고록 『감사』(Gratitude)를 펴냈다. 건강 문제로 2012년 한국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정양한지 10년 만이다. 『감사』는 22.2 x 27.6 cm크기의 풀 칼러 284 페이지 양장본 한정판(비매품)으로 제작했다. 1994년 나왔던 자서전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을 축약, 전재하면서 어린 시절부터의 사진과 지난 10년 간 건강을 회복하며 깨달은 삶의 교훈들을 추가했다.

조안 리. 한국 P.R. 업계를 개척한 국제 홍보 전문 사업가이자 밀리언셀러 작가, 방송인으로, 또 존타 등 여성권익단체 활동가로, 여성신문사 이사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었던 그는 2012년 건강 악화로 일을 손에서 놓았다. 다낭성 신장 및 간 질환 진단을 받은 것이 64세 때였다. 평생 금기에 도전하며, 장벽을 허물며 길을 열어온 그였지만, 투석을 해야하는 현실 앞에서 다른 길이 없었다. 자기 연민과 우울감, 해묵은 고독과 분노, 허탈감과 건강 악화로 3년을 고통받던 그는 “모든 것을 다 그만 둘' 각오를 한다. 『감사』는 그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치고 망가져 휠체어에 의자한 채” 미국에 도착하던 일로 시작한다. “한국의 의사들이 극구 반대한 여행이었다... (중략) 사실 크리스마스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내 인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어쩌면 설날까지를 어떻게든 딸 앤젤라 부부, 갓 태어난 손자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랬던 그가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새롭게 『감사』를 펴낸 것은 이전과 다른 삶의 가치를 찾은 덕이다. 

5S: 단순(Simplicity)·침묵(Silence)·느림(Slow)·나눔(Share)·웃음(Smile)

조안리 전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
조안리 전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

그가 삶을 위해 깨달은 것은 “나라는 존재의 본질적 속성 앞에 겸허해”지는 것이었다. 그 스스로 '전환'(shift)이라고 부른 다섯가지 삶의 깨달음 중 하나인 '치유력있는 단어 5개'는 그런 깨달음의 명료한 결론이다. 영어 알파벳 S로 시작되는 5개의 단어(5 'S' words)는 단순(simplicity)-침묵(silence)-느림(slow)-나눔(share)-웃음(smile)이다.

77년의 삶을 『감사』로 표현하는 조안 리는 누구인가.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기 전에 세상을 뒤흔든 사랑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했다.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태어나 성심여고를 거쳐 1964년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당시 학장이었던 케네스 킬로런 신부(한국명 길로련)와 사제지간을 넘어선 사랑에 빠진다. 천주교 사제와 제자라는 특별한 관계에 28년이 나는 나이 차이까지 더해져 이들은 어마어마한 비난과 장벽에 부딪힌다. 킬로런 신부는 정신병원에 격리되기도 하고 결국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난관을 견디고 도전하고 투쟁하여 결국 로마 교황청의 사면과 허락을 받아 결혼한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식은 가족도 사진 한 장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신혼 부부로 미국에서 자리잡고 살며 두 딸을 낳아 기르던 조안 리는 남편, 두딸과 휴가차 한국에 왔다 조선호텔 P.R. 매니저에 도전해 일을 따냈다. 자기 사업을 위해 설립한 스타커뮤니케이션스는 1980년대 세계 무대에 도전하던 한국 경제의 급성장기와 맞물려 급성장했다. 조안 리가 도전하고 개척했던 비즈니스 일화와 철학은 현재의 사업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던져 준다.

세상에 끊임없이 도전해 온 조안 리의 삶은 두 딸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큰딸 성미(앤젤라)는 CJ ENM 미국대표로 일하며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과 K팝의 미국 상륙을 앞장서 지휘한 사업가이며, 둘째딸 현미(에이미)는 스위스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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