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장밋빛 미래 이야기하지만
기술 자체보다 인간의 기획이 중요
아직은 일부만 AI 기술 편의 누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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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드라마의 대사를 시작으로 ‘추앙한다’는 말이 대세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를 우러르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일은, 아쉽지만 그리 쉬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위력을 앞세워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으로 추앙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사람들이 기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과거에는 비슷했다. 많은 영화 속에서 기계는 도구적인 역할을 하며 사람을 도왔다. 적대적인 로봇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만든 서사에서, 인간에게 감정적으로든 능력으로든 끈끈하게 종속된 로봇만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의 솜씨가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발휘되자, 한동안 기계는 우리의 공포의 대상이 됐다. 알파고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I는 더 이상 능력에 있어 나보다 아랫사람이 아니니, 그들에게 추앙받기는 글렀다는 인식이 한참 퍼졌다.

기술에 생명을 부여하는 인간

그러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그 자체만으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알고리즘에 입힐 기획과 모델이 들어가야 솔루션이 나오고 서비스가 된다. 예를 들어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은 일본 여행 중 간판을 사진으로 찍어 한국어로 해석하는 번역 앱이나, 타이핑을 하기에는 방대한 양의 서류를 찍어 문자를 추출해주는 스캐너 앱으로 쓰일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알파고만 해도 바둑을 제패하는 알고리즘으로 기획이 됐기 때문에 강화학습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

기술에 그 쓰임새를 부여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인간이다. 도구로서의 기술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다음에 볼 영상을 내놓는 서비스가 되기도 했고, 내일 새벽에 배달할 식료품 리스트를 추천하는 용도가 되기도 했다. 기술은 곳곳에서 그것이 해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는데, 막상 기술을 가져다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요즘은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진 동시에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잘 파악해내는 인재에 대한 수요도 상당히 늘었다.

대중에 AI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려는 사람들

AI 기술이 진심으로 쓸만한 물건이라, 사람들에게 더 잘 소개하고 싶어 더 치밀하게 연구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세계 최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학회에서는 특히 AI를 둘러싼 신뢰(Trust)에 대한 연구가 다수 나왔다.

한 예로, AI와 인간이 팀을 이뤄 협업할 때, AI가 인간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인칭 시점에서 “(AI인) 나는 이것이 고양이라는 걸 알고, 그 이유는 이것이 수염을 갖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챘기 때문이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과, 삼인칭 시점에서 “00봇은 이것이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유는 이것이 수염을 갖고 있다고 00봇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약간 거리를 두고 말하는 것 사이에 당연히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¹. 

똑같이 추천하더라도, AI 봇이 인간 사용자의 신뢰를 더 얻을 수 있도록 사용자, 시스템, 맥락의 유형별로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눈길을 끌었다². AI 기술이 인간 사용자의 생산물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알리는 것이 인간 상대방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여러 논문이 나왔다³. 이쯤 되면, 인간이 AI에게 ‘우리에게 잘 보이라’며 한껏 권위를 내세우는 것 같다.

추앙받을 사람을 정하는 것도 사람의 몫

이렇듯 온 세상이 AI가 인간 세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좋은 것을 인간계가 다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의 사람만이 그 대상에 포함된다. 새 기계에 친화적인 사람들, 월 1만원 정도는 지속적으로 거뜬히 결제할 수 있는 사람들, 물리적, 감정적 불편함 없이 쉽게 각종 봇을 써볼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그 모든 바탕에는 효율이 있다. AI 기술을 자체 개발하든, 좋은 것을 가져다 쓰든, 결국 원재료를 버무려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시간과 돈이 든다. 이 서비스를 만드는 데 기여한 모든 의사결정권자들은 그 결과물의 지속성을 위해 매출이 나오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알고리즘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도 타깃 고객층과 데이터 습득의 효율 같은 경제적인 판단에 의해 선택된다. 누군가에게는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다소 불편한 자료가 잔뜩 기계에 학습될 수 있다.

더 나은 AI 서비스로 혜택을 보고, 어렵잖게 즐거움을 얻어가는 이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AI를 체득하며 살아갈 것이다. AI가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정체성을 부여받고, 스스로 숙고 끝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직까지는 미래의 이야기다. 그러니 지금은 인간이 만들어 둔 질서 속에서 갖은 결정이 이뤄진다. 인간은 결핍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인식한다. 그 찬란한 AI 서비스들을 문득 누리지 못하거나, 또는 그로부터 불편함을 느낀 어느 날, 나는 비로소 추앙과는 퍽 멀어진 현실을 느끼게 된다.

 

[참고문헌]

¹ Zhang et al. (2022) You Complete Me: Human-AI Teams and Complementary Expertise. CHI 2022.

² Cai et al. (2022) Impacts of Personal Characteristics on User Trust in Conversational Recommender Systems. CHI 2022.

³ Liu et al. (2022) Will AI Console Me when I Lose my Pet? Understanding Perceptions of AI-Mediated Email Writing. CHI 2022.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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