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대다수인 조직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실내 흡연이 허용되던 시절, 전후좌우에서 내뿜는 담배 연기를 고스란히 마셔야 했지요. 회식 때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연기로 매캐해진 방에서 두세 시간씩 있어야 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옷은 물론 머리카락에서도 담배 냄새가 나곤 했습니다.

견뎌야 했던 건 담배연기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선 걸핏하면 유머라는 이름의 와이담(わいだん)이 등장했습니다. EDPS(음담패설)라고도 불리던 술자리 와이담의 대부분은 성적인 내용이거나 여성을 깎아 내리는 것들이었습니다. “경제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 취한 남자는 부채, 술 취한 여자는 자산” 하는 식이지요.

지금같으면 대놓고 ‘위험한 발언’이라거나 ‘선을 넘었다’고 핀잔을 줄 텐데 당시엔 그저 가만히 있거나 대범한 척 같이 웃어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듣기 거북하다고 인상을 쓰거나 한마디 했다간 ‘속 좁고 예민한 여자’로 치부됐기 때문입니다. 와이담의 대가들이 대우 받는 건 물론 서로 자기도 해보겠다며 수첩에 빼곡이 받아 적던 때였으니까요.

지금은 어떨는지요. 예전보다는 줄어든 듯하지만 유머라는 이름의 와이담은 지금도 그 힘을 유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오프라인상에서 들을 일은 적었겠지만, 카톡방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 상에선 여전히 유통되는 것같습니다. 남성 전용 혹은 남녀 공용 톡방은 물론 여성 전용 톡방에서도 ‘오늘의 유머’라는 미명으로 등장하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 있고 분위기를 띄운다는 거지요. 정말 그럴까요. 유머 혹은 우스갯소리라는 와이담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야한 농담입니다. 음담패설이지요.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 보면 EDPS의 특징은 여성의 대상화입니다. 소비층이 주로 남성이어서일까요. 남성이 EDPS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야한 농담이 아닌 다른 하나는 여성을 폄하 내지 비하하는 것입니다. 고부관계를 풍자하면서 며느리를 못된 여자로 만들거나, 세상 아내는 죄다 남편을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여자로 묘사하거나 돈밖에 모르는 속물로 매도하는 겁니다.

야하든 아니든 여성을 대상화한 내용이 ‘유머’라는 이름으로 마구 소비되는 현상은 안타깝습니다. 회식 등에서 이뤄지는 경우 불편하고 불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언짢은 순간 그 유머는 유머가 아니라 젠더폭력이거나 ‘성희롱’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 사람이 가입해 있는 톡방에서 주고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머는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합니다. 현실에서 대놓고 하기 힘든 말을 유머라는 장치로 대체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정치인의 삶이나 행동을 소재로 한 유머가 유독 많은 것도 그런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유머나 농담, 우스갯소리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고 폄훼하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싶습니다. 말은 습관이고, 습관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강화합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음담패설을 유머라며 입에 올리고 그걸 들으면서 웃고 박수 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여성의 인권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하게 될지 모릅니다.

여성을 갈등 유발자나 물질만능주의자로 모는 얘기들을 재미 있다며 여기저기 옮기는 것도 지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비다니 세상 참 살기 힘들어졌다”고 할 게 아니라 무심코 퍼나르는 말들이 여성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고정 내지 확대재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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