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기/스스로 구원하기, 타계를 여행하기, 샤먼/무속 신화 '바리데기'

'버려진 나'는 누구인가… 치열한 자아 찾기

누군가의 부름이 들린다. 온 몸으로 그 부름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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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에 지진이 인다. '너는 샤먼이 되어야 한다'는 이 부름 앞에서 전율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만주족의 창세 신화 <우처구우러본>에 의하면 샤먼은 창조 과정의 필수 구성요인으로서 여신이 특별히 점지하여 키운 영매다. 여신의 뜻으로 부름을 받아, 여신의 지혜로 들림을 받은 영매들의 원형적 이미지, 이것이 바로 한국의 무속신화 '바리데기'의 모습이다. 영매는 신들의 초월적인 세계가 지상의 시공간으로 벼락처럼 뚫고 들어오는 찰나의 열림을 구현한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하면 무의식의 세계가 삶의 원천으로 독해가능해지는 미침, 들림의 인식 순간을 체현한다.

                                                                    전갑배 '바리데기'(2000)

                                                                 <사진·gbchun.home.uos.ac.kr>

이처럼 샤먼 자신의 개인적 엑스터시가 공동체의 집단적 무의식의 분출로 이어지듯이 샤먼의 고통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 문화적인 성격을 띤다. 한국의 굿판에서 가장 많이 구연되는 <바리공주> 신화는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버려진 한 아이가 샤먼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서술함으로써 한국이라는 문화적·정치적 삶의 공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매번 새로운 형태로 무대화한다. 이 아이, 버려졌으나 공주이기에 '바리공주'라 불리기도 하는 이 아이가 샤먼이 되기 위해 겪는 두 번의 긴 여행은 궁극적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영매가 되기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물론 그 과정의 필연성이 '딸'로서, '여성'으로서 바리가 매순간 살아내는 실존과 존재의 격랑을 모조리 설명해 낼 수는 없다. 바리는 '버려진 아이'라는 과거분사형 추상명사에서 매번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건 속에서 움직이고 움직여지는 고유명사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딸로 태어남 -> 버려짐 -> 타지의 성장 (1차 여행) ->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길 떠남 -> 조력자를 만나 여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함 (2차 여행) -> 생명수를 지키는 남성에게 성적 요구를 당함 -> 생명수로 부모를 살림.

이와 같은 내러티브 구조를 지닌 신화는 전세계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가부장제적으로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의 서사형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설화에서는 생명수를 지키는 남성에게 성적 요구를 당하는 부분이 더욱 폭력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보편성을 좀더 분명하게 확인시켜준다.

<바리공주>의 경우 그러나 여성의 삶을 둘러싼 이러한 정체성의 질문은 삶 그 자체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죽음에의 응시 속에서 수행됨으로써 특별한 내면성의 시공간을 열어놓는다. 버려진 뒤 공덕할미 손에서 자라는 바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며 15세를 맞이했다. 신화 속에서 15세는 소녀가 여성이 되는, 말하자면 초경의 시점이다. 이때부터 그녀들은 본격적으로 '사건과 의미들의 연결망'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버려진 채' 14년을 살았기에 15세가 되었을 때 바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사건과 의미들의 연결망'은 무엇보다도 '왜 나는 버려졌는가? 나의 버려짐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를 푸는 것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바리공주>를 읽을 때 화두처럼 마음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 있다. '언제쯤 바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까? 접시 속의 아버지 피가 자신의 피와 섞여드는 것을 보았을 때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서천서역국으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천서역국을 향해 낮과 밤을 걸을 때, 강을 건널 때, 그곳에 도착해 생명수를 지키는 무장승과 함께 살며 7년 동안 아이들을 낳고 노동할 때, 그때 바리는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왜 버려졌는지 그 이유와 의미를 알았을까? 아니면, 그 질문 자체가 허망하다고 느꼈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생명수를 가지고 부모 나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바리가 죽은 혼들의 저승여행에 동반자가 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언제쯤일까?' 제의적 시공간 속에서 샤먼과 함께, 바리'들'과 함께 죽은 혼의 여행길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그때 바로 자신의 삶을 조형하고 있는 무의식의 구조에 자신의 질문을, 자신의 언어를 부여하는 '들림'을 체험할 것이다. 그곳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여성들의 존재방식과 더불어 '존재 일반'을 향한, 삶과 죽음의 비밀에 대한 '실존적 질문'의 (실존주의는 '내던져진 존재'를 말한다) 현장인 것이다.

바리공주가 7년간 노동을 하면서 자식들을 낳아 기른 그곳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 즉 림보(Limbo)이다. 이러한 중간지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삶과 그 삶의 의미를 숨기고 있는 죽음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곳이다. 성스러운 공간의 상실이 얼마나 심각한 내면의 황폐화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성찰과 함께 전 지구적으로 영성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고 있는 이 즈음, 바리와 함께 림보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하늘나무' 또는 '동굴' 이미지가 은은한 산책 코스를 개발하는 것은? 아니면 자신의 세속적 공간 어디 한 군데를 '바리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글 싣는 순서

① 21세기 신화의 주역, 여신들

② 에로스, 여성의 사랑과 희열

제주 농경신 '자청비'

③ 창조, 생성, 탄생 만주족 창조신화 '우처구우러본'

④ 버림받기/스스로 구원하기, 타계를 여행하기

샤먼/무속 신화 '바리데기'

⑤ 야한 농담과 몸짓, 쾌활함 일본 '아메노우즈메 노미코토'

김영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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