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S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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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갈등’, ‘분열’이라고 할 정도로 사회 각 분야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해 킹스칼리지 런던정책연구소가 세계 28개국을 대상으로 12개 항목에서 ‘불평등’ 정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빈부, 이념, 정당, 세대, 성별, 종교, 학력 등의 분야에서 압도적인 1등을 한 바 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갈등이나 분열이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지만작금의 현상은 지나친 부분이 있다. 조사 결과와 같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면 경제력과는 상관없이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갈등이나 분열이 국가나 그 사회가 향후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는데 장애물이 되므로 반드시 해소돼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러한 불평등 사회에 있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사회가 다양성보다는 획일적인 것을 지향해, 나와 다른 의견 등을 이해하지도, 그들을 인정하려 들지도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즉 나와 같은 편이 아니면 배척하고 무시하고 차별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동안 ‘성숙한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아봤는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1987년 이후 우리의 광장 민주주의와 제도적 발전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도를 넘어 탄성을 자아내고 있으나, 정작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갈등과 분열로 갈기갈기 찢겨져 고통 받고 있는 이 모순적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최근 갈등의 주요 이슈가 된 ‘젠더’ 분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젠더 갈등 관련 정책이 무엇인지, 그것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고 그 정책이 왜 필요한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여성과 남성 당사자, 학계, 민·관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던가? 이러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어떤 면에서 언론, 정치권 등은 갈등을 악용하고 부추겨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의 갈등과 분열은 용납되어서는 안 되므로, 헌법상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을 위해 정부, 언론, 정치권이 뜻을 모아 실천으로 앞장서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조직구성이나 조직문화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연령, 장애여부, 성별, 인종, 민족, 국적, 종교 등의 특성을 두루 살펴보는 가운데,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성별·계층별·세대별 관점 등을 고려한 법제 정비와 정책 마련 등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현황은 어느 정도일까? 먼저 ‘정치·행정’ 분야를 살펴보면, 21대 국회의원 여성비율(19%)은 전 세계 의회 여성비율(26.1%)보다 낮으며 노르딕 국가 의회 여성비율(44.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2018년 지방선거에 따른 광역의원 중 여성비율은 19.4%, 기초단체장 중 여성비율은 3.98%, 광역자치단체장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여성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옴에도 불구하고,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은 여전히 과소 대표되거나 혹은 배제되고 있으므로, 이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조차도 “유럽 정치가 너무 남성중심적”이라고 지적했을 정도인데, 하물며 여성대표성이 더 낮은 우리 정치는 어떤 모습이겠는가? 따라서 ‘다양성이 확보된 정치문화’로의 개선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성별뿐만 아니라 세대별의 다양성의 확보도 필요한 데 다행스럽게도 2020년에 선거권 연령이 18세로 하향 조정되었고, 올해 초에 지방선거 총선 출마를 위한 피선거권 연령이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정당가입연령이 만 16세로 낮아져 청소년의 정치참여의 길은 마련되었다. 독일은 14세부터 당원가입이나 정당의 청년조직 가입이 가능하고 학교에서 정치에 대한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도 청소년의 정치적 참여권을 증진하기 위한 권고를 의결한 상태이므로, 학교의 정치화를 우려하기 전에 청소년의 건전한 정치참여 활성화 방안이 다각적으로 모색되어 정치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경제’ 분야를 보면, 국내 상장기업의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자산 2조원’을 기준으로 극명한 차이를 나타내는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82.6%가 여성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반면, 2조원 미만 상장기업은 불과 8.1%로 매우 낮다. 이는 올해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 구성원을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이에 반해 2020년 10월 현재 유럽연합의 경우 상장기업 이사진의 여성비율이 29.5%로 우리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프랑스·이탈리아(40%), 벨기에·포르투갈(33%), 독일·오스트리아(30%) 등과 같은 국가들은 이사회의 성별균형을 위한 할당제를 일찌감치 법에 규정해 왔다. 더욱이 유럽연합은 2027년까지 “회원국 상장기업 또는 250명 이상 직원이 있는 기업은 이사진 3명 중 1명을 여성으로 선임”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 중이며, 이미 회원국 27개국이 법안 도입에 합의를 마친 상황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처럼 성별, 세대별 등을 고려한 조직의 다양성이 우리보다 높은 국가들이 할당제 등을 통해 조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다양성’이 사회적 갈등을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 요소이고, 우연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정부 및 사회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진 갈등해소를 위해 성별, 세대별 등을 고려한 할당제 등 다양한 조직구성 및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법제 및 시책을 더 활성화해야 하지 않을까?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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