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신사임당 반대…유관순·김만덕·허난설헌 주장

한국은행이 발행을 검토중인 10만원권 두고 화폐 인물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선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율곡학회와 여성계가 팽팽한 대립의 선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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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학회소속 회원 30여 명이 지난 22일 오후 한국은행 앞에서 새로 발행될 고액권 화폐에 신사임당의 영정을 모시자는 가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성계는 현모양처형보다는 21세기 역할모델이 될 여성을 선정하자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견된다.

<사진 민원기기자>

율곡학회가 고액권 화폐 인물로 신사임당을 지지하고 나선 데 대해 여성계가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기 때문. 이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공통분모에 '시대 인식'이라는 분자가 서로 엇갈린 것으로, 더 나아가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가'하는 논란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이와 함께 21세기 비전을 제시할 진보적 여성인물이 화폐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계가 본격적인 인물 선정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발단은 지난 22일 율곡학회가 서울 광화문 한국은행 앞에서 '새 화폐에 신사임당을 모시자'는 가두 캠페인을 벌이며 신사임당의 모습이 새겨진 화폐 형태의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여론 확산 행사를 진행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학회는 한국은행 총재 앞으로 새 화폐 인물로 신사임당을 선정할 것을 건의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율곡학회 이종덕 실장은 “남성 위주의 화폐 발행에서 벗어나 여성의 모습도 화폐에 담겨져야 한다”며 “신사임당은 한국의 대표적 어머니일 뿐 아니라 자아실현도 이룬 인물”이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 동안 남성 일색인 화폐에 대해 개혁을 부르짖어 온 여성계가 가부장적 시선으로 재단돼 '현모양처'의 대표적 역할모델이 돼온 신사임당은 화폐 인물로 적합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 김경애(동덕여대 여성학과 교수) 회장은 “무조건 여성의 얼굴만 화폐에 찍힌다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진 않는다”며 “어머니 역할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여성상이 21세기 첫 지폐 인물로 선정되는 건 국제적으로도 망신”이라고 반박했다.

“화폐모델 '진보여성' 적합”

지난 해 화폐 속에 역사적 여성인물을 재현한 '화폐개혁 프로젝트'전을 연 박영숙(여성문화예술기획 공동대표) 사진작가는 “신사임당은 남성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여성역할로 남성들에 의해 칭송되고 기록된 인물”이라며 “권력자 집안에서 부유하게 자라나 주체적인 삶을 살기보다 남성 지배 구조 속에서 보호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성계 일부에서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여성을 지지하는 건 시대적 착오”라며 “신사임당이 들어간 지폐에서 박근혜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여성계가 지금까지 화폐인물로 추천한 여성은 '유관순' '허난설헌' '김만덕''이태영' '소현 세자빈 강씨''명성황후''나혜석''선덕여왕'등으로, 이 중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유관순''허난설헌' '김만덕'이다.

하지만 화폐인물 선정에서 율곡학회,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등 신사임당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힘을 모으는 반면, 21세기 진보적 여성 역할모델을 추천하는 여성단체들이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인물 선정 합의가 여성계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는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정강자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등을 운영위원으로 하고, 사회인사 남녀 각각 50명씩 100인이 참여하는 '여성인물을 화폐에 추진위원회'의 구성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화폐 여성인물 선정에서 “여성계가 주축이 돼 다각도로 논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은행은 화폐에 들어갈 소재는 여론뿐 아니라 역사성과 한국적 이미지, 위조방지 여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감현주 기자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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