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부교수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CESCR)
위원 오른 역대 두 번째 한국인

“소수자가 정치도구 된 한국 안타까워
정치권, 차별금지에 초당적 합의해야
난민 인권은 중요한 ‘소프트 파워’
한국, 우크라 난민 지원 강화해야”

2023~2026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 위원에 당선된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부교수를 3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2023~2026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 위원에 당선된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부교수를 3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한국 출신 인권 전문가가 또 한 번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사회권위, CESCR) 위원에 당선됐다. 주인공은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부교수. 이번에 선출된 2023∼2026년 임기 위원 9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CESCR 위원에 오른 역대 두 번째 한국인이다. 두 명 모두 여성이다. 

20여 년간 인권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해온 전문가다. 영국 에섹스대에서 국제인권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권법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서울대 내 인권 침해 상담·신고·대응과 학내외 인권 문화 확산을 위해 설립된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재직 중이다. 한국인권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이 위원이 진출한 CESCR은 국제 인권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기구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한 전 세계 171개국의 사회보장, 노동, 임금, 교육, 기업 경영, 취약계층 보호 등 규약 이행을 심의한다. 대한민국은 1990년 이 규약에 가입했다. 앞서 신혜수 (사)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이 한국 최초로 2011년 CESCR 위원에 당선됐고, 2022년까지 3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이 위원이 차기 위원에 당선되면서 한국은 15년간 CESCR 진출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지난 3일 서울대에서 만난 이 위원은 “아직 임기 시작 전이라 인터뷰는 조금 민망하다”면서도 진지하게 질문에 답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인권 위기, 여성가족부 폐지론, 장애인 차별·혐오가 대두되는 한국 사회의 ‘인권 퇴행’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한국이 진정한 강국으로 인정받으려면 난민 등 소수자의 인권 보호·지원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규범도 이행되지 않으면 아름다운 말에 불과하다”며 각국의 인권 실태를 면밀하게 살펴 개선 권고에 힘쓰겠다고 했다.

3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주영 2023~2026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 위원. ⓒ홍수형 기자
3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주영 2023~2026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 위원. ⓒ홍수형 기자

- CESCR 위원이 된 소감은.

“IMF 사태를 계기로 노동자, 사회적 취약 집단의 사회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20여 년간 인권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CESCR 보고서를 연구 자료로 삼아왔는데, 제가 위원으로 활동하게 돼 뿌듯하다. CESCR은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구다. 좋은 규범도 이행되지 않으면 아름다운 말에 불과하다. 제 전문성을 잘 살려서 여러 국가의 현실을 주의 깊이 살피겠다.”

- UN의 역할이 시험대에 오른 시기에 직책을 맡게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국제기구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UN 체제가 큰 도전을 맞았다. 주권 원칙, 무력 사용 금지 등 평화 공존을 위한 기본 합의가 폭력적으로 깨어졌다. UN 회의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런 체제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러시아를 당장 못 막는 것은 비극이지만 ‘인도에 반하는 전쟁범죄’, ‘국제법 위반’이라는 언어를 갖고 현실을 분석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해 나가고 있다. 다시 희망을 찾는 과정이라고 본다.”

- 한국도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과 인도적 지원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의한다. (높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 외교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지만, 심각한 폭력을 겪은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 국가적 위상에 걸맞은 행동이다.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는 일, 과거에 받은 것을 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때 많은 한국인이 난민 신세였다. 한국은 난민법을 시행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난민 권리 보호·지원에 얼마나 힘쓰느냐도 한국의 중요한 ‘소프트 파워’다.”

- 최근 한국 사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장애인 차별·혐오 논의가 퍼지는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안타깝다. 사회적 소수자가 정치의 도구가 됐다. 정치인들은 성별, 인종, 장애 유무, 성적지향 등과 관련된 차별은 안 된다는 데 초당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정치란 자원을 더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과정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이 소수자를 지지기반 강화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 요즘은 어떤 연구/활동을 하나.

“이주민의 권리, 다문화 사회에 관심이 많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고민한다. ‘인권에 대한 관계적 접근’도 고찰해왔다. 우리는 고유한 권리를 지닌 개인들이면서도 다른 이들과 연결돼 살아간다. 어떤 관계망을 형성할 때 불평등이 줄어들지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재난 상황에서 더 피해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기후 위기 등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인권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해 보고 싶다.”

- 앞으로도 우리나라 여성들이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국제협력에 적극 참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한 국가를 넘어선 시야를 요구한다. 팬데믹, 기후변화, 미세먼지 같은 이슈는 단적인 예이지만, 다른 영역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다.

공부든 일이든 그 분야의 전 세계적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 국가에 시야를 가두지 말고 좀 더 넓게 교류할 필요가 있다. 관심 있는 사안에 대해 외국 매체들도 같이 볼 필요가 있다. 관심 있는 분야가 무엇이든 그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공부하고 일하다 보면, 국제협력의 장에 가까이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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