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컷오프 후 극단 시도한 황춘자, 냉혹한 정치 현실을 말하다
[인터뷰] 컷오프 후 극단 시도한 황춘자, 냉혹한 정치 현실을 말하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2.05.04 08:22
  • 수정 2022-05-04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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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춘자 도시컨텐츠연구소 대표
6·1 지방선거에 마지막 도전장 냈지만
경선 못가보고 컷오프… 8년 노력 물거품
“내가 죽어야 달라질까” 음독 기도까지
정치 신인들에겐 ‘공정한 시스템’ 적용되길
황춘자 도시컨텐츠연구소 대표 ⓒ홍수형 기자
황춘자 도시컨텐츠연구소 대표 ⓒ홍수형 기자

6·1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선거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곳곳에선 공천을 둘러싸고 반발과 잡음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1차 컷오프(경선배제)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국민의힘 용산구청장 예비후보였던 황춘자 도시컨텐츠연구소 대표는 컷오프된 후 지난달 25일 음독을 시도했다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수면제 60알을 세 번에 나눠 삼켰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쓰러진 그를 발견한 사람들 덕분에 그는 목숨을 건졌다. 공천 받지 못한 이의 ‘정치쇼’ 아니냐는 비판도 들려온다. 그는 ‘여성인재’로 영입돼 8년 동안 당선될 듯 말 듯 한 희망고문을 끊어내지 못하고 돈과 땀을 쏟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황 대표를 만나 극단적 선택의 이유와 심경을 들었다. 황 대표의 8년간의 정치 여정은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갖지도, 공평한 평가를 받지도 못하는 많은 여성 정치인의 현실이기도 하다. 

2014년 여성인재로 새누리당 영입
지난 8년간 지역 기반 다졌지만…

“컷오프로 지난 8년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어요.”

황 대표의 목소리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간 쌓아올린 노력의 대가가 컷오프로 돌아왔다는 분노와 억울함이 담긴 울음인 듯 했다.

서울 용산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용산구청장 예비후보가 총 10명에 이를 정도로 이번 6·1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혔다. 현역인 성장현 구청장이 3선 연임 제한에 걸리면서 무주공산이 된 까닭이다. 게다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자치구를 이끌 인물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황 대표는 이곳에서 8년 넘게 터를 닦으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때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황 대표는 촉망받는 여성 리더였다. 20대 초반 여군 하사관으로 입대해 대위로 전역하기까지 8년간 육군으로 복무한 그는 서울메트로에 입사해 25년 만에 지방공기업 최초 여성 임원에 올랐다. 여성으로서 군 조직을 경험하고 서울메트로에서 행정전문가, 교통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온 그를 정치권은 눈여겨봤다. 2013년 퇴임한 뒤 이듬해 새누리당 여성인재로 영입되며 정치를 시작한 그는 내리 8년을 용산구에서 활동했다. 2015년 도시컨텐츠연구소를 세워 연구와 세미나를 열면서 용산 개발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그렸고 자유한국당 용산구 당협위원장 등을 맡아 지역 기반을 닦아 나갔다. “8년간 제 삶은 온전히 용산에 머물렀다”고 표현할 만큼 ‘올인’했다.

“용산은 도시쇠퇴율이 서울 내 2위일 정도로 발전이 더딘 자치구이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한 지금 시점에 ‘용산 맞춤형 전문가’인 제가 구청장으로서 새로운 용산 100년의 초석을 다질 적임자라고 생각했었죠.” 

용산구청장 출마를 준비하며 만든 팸플릿과 명함. ⓒ홍수형 기자
용산구청장 출마를 준비하며 만든 팸플릿과 명함. ⓒ홍수형 기자

 

구청장·국회의원 등 4번의 도전
대진운, 당내 정치에 밀려 낙선

‘공천’은 노력과 능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 대표는 2014년 이후 네 번의 선거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2014년 첫 선거에선 용산구청장에 도전해 45%의 지지를 얻었으나 아쉽게 낙선했다. 2016년 총선에선 더민주당으로 당을 바꿔 출마한 진영 후보를 넘지 못했다. 당시 표 차이는 2.8%포인트(3274표)에 불과했다. 2018년 자유한국당 용산구청장 공천 경쟁에서 김경대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2019년 당협위원장 공모에서 3선의 권영세 전 주중대사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듬해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당협위원장인 황 대표가 아닌 권 전 주중대사를 후보로 확정했다. 

국민의힘 황춘자 용산구청장 예비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원실 앞에서 공정한 공천경선을 촉구하며 국회출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황춘자 용산구청장 예비후보가 4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원실 앞에서 공정한 공천경선을 촉구하며 국회 출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6·1 지방선거는 제게 마지막 기회였어요.”

황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를 마지막으로 여기고 온힘을 기울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경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1차 컷오프 명단에 ‘황춘자’ 이름 석 자가 올랐다. 황 대표는 경선 컷오프에 반발해 4월 24일 오후부터 당사 앞에서 간이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을 벌였다.

“자체 여론조사에서 제가 1위여서 당연히 제가 경선에 오를 줄 알았어요. 8년간 남들 두 배로 뛰었고 용산 구석구석 안 가본 골목이 없을 정도로 준비했습니다. 선거는 돈 없이 안됩니다. 30년간 일하며 번 돈으로 모은 재산도 많이 처분했어요. 집 세 채를 팔았죠. 될 듯 될 듯 되지 않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1, 2년도 아닌 오롯이 8년을 뛴 거잖아요. 절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던 남편과도 소원해졌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왜 이렇게 잔인한가요. 정의도, 의리도,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된 평가도 없잖아요.” 

황춘자 도시컨텐츠연구소 대표 ⓒ홍수형 기자
황춘자 도시컨텐츠연구소 대표 ⓒ홍수형 기자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황 대표는 “일 하고 싶다”고 답했다 

당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공정한 공천 심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농성을 한들 변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거리에 오물이 떨어져 있으면 어른이 치우는 것이 맞잖아요. 다섯 번 선거를 치르면서도 변하지 않았잖아요. 누군가는 죽어야 바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2020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며 울화병이 왔다고 했다. 정신과 약에서 수면제를 모아 60여알을 삼켰다. 다행히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한 사람들의 신고로 그는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요. 노력하는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은 세상을 겪다보니 너무 많이 아파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의 정도가 누진되는 것 같아요. 저는 죄가 없잖아요.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뿐인데.”

그 사이 국민의힘 용산구청장 후보는 박희영 전 용산구의원으로 결정됐다. 2014년 용산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박 후보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권영세 의원의 정책특보 용산당협 부동산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황 대표는 정치 불신을 불식시키고 잘못된 정치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공천 감시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제3자가 공천 상황을 파악하고 견제하는 공식 기구가 있어야 나와 같은 사람이 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참이나 말을 골랐다. 그리고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날개를 펼쳐보지 못했기에 그간 쌓은 전문성과 역량을 제대로 펼쳐 보일 수 있는 장이 있다면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철도경영을 해보고 싶어요. 30년간 조직에서 경영평가 1,2등을 놓친 적이 없어요. 여성 후보들이 리더로 성장하는데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제게 그 책임이 맡겨진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선거철만 ‘반짝’ 인재 영입 
신인 ‘생존’하려면 시스템 필요

황 대표는 자신이 겪은 냉혹한 정치 현실을 후배 정치인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공정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외친 이유다.

“저는 늦었지만 후배들은 이런 불공정한 공천 시스템 안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문제를 알리고 조금이라도 제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런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여야는 선거철만 되면 청년·여성의 정치 참여를 독려한다. 인재 영입은 선거 때마다 반복됐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정치 신인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입할 때는 제왕처럼 모시지만 선거가 끝나거나 ‘낙선’하면 존재감마저 희미해지는 것이 정치의 냉혹한 현실 이다. 정치 신인이 정치인으로 안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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