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제정 1년
온라인 스토킹 수법 다양·교묘해져
비번 바꿔라, 금융기관 연락 등
‘도달’ 조항 맹점 탓, 처벌 어려워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스토킹이 단순 경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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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이 4월 20일 제정 1년을 맞았으나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토킹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명시된 ‘도달’이라는 근거 규정 탓에 다양한 범죄 수법으로 파생되는 온라인 스토킹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안·공포감 일으키는 온라인 스토킹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은 지난해 10월 시행됐다. 그러나 온라인스토킹은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스토킹처벌법 제3항을 보면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이하 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전문가들은 이 조항에 들어 있는 ‘도달’이 법의 허점이라고 지적한다.

스토킹처벌법 제정 1년을 맞아 지난 20일 국회에서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1년 평가와 과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글이나 그림 등을 상대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중심으로 스토킹을 정의한다. 설령 이같은 행위들이 대표적 스토킹 유형이라 하더라도 현실에서 스토킹의 방법은 무수히 다양하며 기술 변화에 따라 기존에 없거나 드물던 유형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또 “상대방에게 이메일을 전송하는 대신 스토킹행위자의 SNS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대방에 대한 또는 상대방을 암시하는 글을 계속 남기는 행위,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메시지를 공개 게시판에 남기는 행위 등은 상대방에게 직접 글이나 그림 등이 ‘도달’하게 하는 행위에 포함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상대방의 계정으로 로그인을 시도하고 상대방에게 비밀번호 찾기 메일이 지속적으로 전송되도록 하는 행위 역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는 행위’에 해당될 지, 또는 이같은 행위가 실무에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해석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활동가도 피해 지원 중 접한 온라인스토킹 사례로 △인터넷 게시판에 피해자의 신상과 사진을 유포하는 경우 △익명 계정을 만들어 소셜 미디어에 피해자의 사진과 모욕적인 글을 게시하는 경우 △피해자가 이용하는 웹페이지에 침입해 성폭력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경우 △피해자인 척 가장해서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채팅으로 접근한 뒤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 등을 소개했다. 신성연이 활동가는 “피해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거나 그가 인지할 수 있는 영역에만 메시지를 남기는 것은 일부이며 피해자 주위를 파고 들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라인 스토킹의 내용은 성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며 “인터넷 게시판에 ‘지인 능욕’이 연상되는 게시물을 올리거나 성적 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플랫폼에 개인정보를 유포해 성적 메시지가 피해자에게 도착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금융기관에서 연락 오게 만들기, 홈페이지 비밀번호 변경을 시도해 알림 메시지 띄우기, 학교나 직장에 거짓 사실 제보하기 등도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스토킹은 완전한 타인도 가능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스토킹은 친밀한 관계를 넘어선다. 사이버스토킹 가해 경험 조사(여성의 온라인 인권피해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온라인에서 관심 있는 사람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해 개인정보나 일상을 엿보거나 감시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45.3%에 달한다. 또 지난해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사이버스토킹 연구를 보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묻는 문항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1.5%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지인’ 23.5%, ‘가해자를 알지 못함’이 19.0%였다.

신성연이 활동가는 “가해자는 일생에서 잠깐 마주친 사람, 심지어는 온라인 신상정보를 타고 접근한 완전한 타인으로까지 확장된다”며 “‘도달’은 온라인성폭력 피해 지원 영역에서 늘 문제였고 온라인스토킹의 기본인 온라인 감시 행위를 포착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독일처럼 스토킹 행위 개념 넓혀야”

따라서 독일의 형법처럼 ‘스토킹에 준하는 행위’로 포괄적 규정을 둬 스토킹 행위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27일 “독일의 경우, 스토킹 행위를 다섯 가지로 규정하되 여섯 번째 항목에 ‘앞선 항목에 준하는 행위로 피해자에게 공포심·불안감을 주는 행위’ 식으로 포괄적 보충적 규정을 두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선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뒤에도 온라인 스토킹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정도만 성립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토킹 행위가 법률적으로 반영되려면 법 현실, 법 감정을 반영해야 하고 스토킹 행위의 규제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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