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배우 김소향
인기 창작 뮤지컬 ‘프리다’ 주연
여성들로 꽉 채운 여성서사
남성 관객 많아 배우들도 놀라

“역대 최고로 힘든 작품...그만큼 에너지 얻어
여성상 깨는 작품에 관객들 해방감 커
좋은 창작극 더 선보이고파”

창작뮤지컬 ‘프리다’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김소향(42)이 25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창작뮤지컬 ‘프리다’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김소향(42)이 25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개막 후 3주간 매일 부항을 떴다. 근육 테이프를 오려 부항 자국을 가리고 무대에 섰다. “15년 만에 춤을 췄어요. 역대 공연 중 가장 힘들어요!” 뮤지컬 배우 김소향(42)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김소향 배우는 절대 지치지 않아요.” 인터뷰 전 배우의 컨디션은 어떤지 묻자 홍보 담당자가 한 말이다. 맞다. 태양 같은 에너지를 내뿜는 배우다. 요새 ‘진취적 여성 캐릭터’를 자주 맡는다. 2020년 마리 퀴리, 2021년 ‘작은 아씨들’ 조에 이어 ‘프리다 칼로’로 변신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이 된 작가,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의 대명사다. 김소향은 100분 동안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이 위대한 예술가의 비애와 열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고요한 호수와 집어삼킬 듯한 파도를 오가는 연기가 압권이다.

“감정의 밑바닥을 연기하는 걸 워낙 좋아해요. 인간 본성의 끝과 끝을 표현하는 게 배우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부르는 대표 넘버 ‘코르셋’을 들으면 전율이 인다. “코르셋과 목발을 난, 갑옷과 검처럼 들었어, 그러니 더 크게 웃어...” 17세 때 교통사고로 온몸이 부서졌지만, 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여인의 노래다. 김소향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관객의 눈을 보며 ‘나는 변치 않아, 운명이 원래 잔인해, 그냥 웃자’고 이야기하는 듯한 기분이에요. 처음이에요. 소름 돋게 좋아요.”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3월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대표 넘버 ‘코르셋’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3월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대표 넘버 ‘코르셋’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주체적 여성 서사, 강렬한 음악, 실력 있는 ‘언니들’이 모여 멋진 연기와 앙상블을 보여준다는 입소문이 나며 관객이 몰리고 있다. 소극장 공연답게 배우의 숨소리, 몸짓과 표정을 가까이에서 보는 즐거움이 크다. “우리 배우들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요. 다 깨부수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요. 그 에너지와 웃음소리에 분장실 벽이 깨질 것 같아요. 공연하면서도 우리 배우들 진짜 멋있다! 노래 잘한다! 생각해요.”

남성 관객도 많다. “소극장 공연은 여성 관객이 대부분인데 그 어려운 앞자리를 사수한 남성들이 적지 않아요. 우리도 놀랐죠. 우는 남성들도 많고요. 성(性)의 경계가 없는 작품이고, 프리다 칼로의 힘이기도 하죠.”

추정화 연출·작가는 “파도처럼 다가온 고통을 승화시킨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애초에 김소향을 염두에 둔 극이다. “제가 프리다 칼로의 ‘광팬’이에요. 정화 언니가 ‘소향아, 내가 칼로에 대해 쓰고 있어’ 하기 전부터 그림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과 초상화를 집에 걸어뒀죠.” 올해 데뷔 21년 차. 인생의 파도를 몇 번이고 만났다. 2011년 서른 넘어 브로드웨이 유학을 떠나 오디션에 100번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프리다가 느꼈을 고통을 완벽하게 알진 못해도 이해할 수 있어요.”

김소향은 공연 제작 과정에서 의견을 적극 내는 배우다. 이번에도 그의 제안으로 극 중 ‘데스티노’(죽음)의 분량이 처음보다 대폭 늘었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기로 한 프리다가 절망을 딛고 춤추는 장면이 있다. 김소향은 현대무용 전공자답게 구르기, 옆돌기, 발레 동작까지 가능한 기술을 총동원했다. 관객 반응은 뜨겁다. 붉은 꽃잎이 떨어지는 가운데 춤추는 그를 보며 눈시울을 훔치는 이들이 많았다. “앞으로 무대에서 더 많이 춤출 테니 기대하시라”고 했다.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노래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노래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체력이 전부다. “오프닝부터 ‘100’으로 시작해야” 한다. 1시간 전부터 몸을 푼다. 커튼콜까지 약 3시간을 “미친 듯이 쏟아붓는”다. 코로나19 확진 판정 일주일 후 바로 무대에 섰다.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하는데 관객들은 더 절박해 보였다고, 더 프리다 같았대요. 하하.” 

공연이 끝나면 “몸이 구겨진 쓰레기 같다”.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샤워하기도 싫어서 쪼그려 있고.... 그래도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 외치고 내려오면 배우들 모두 깔깔 웃으며 떠나요. 프리다처럼, 그래도 우리는 살 거야, 행복하자! 다음날 공연할 힘을 얻죠.” 관객들도 ‘내 인생도 이 정도면 훌륭하지’, ‘그래도 살아야지’하면서 힘을 받아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공연의 한 축은 칼로와 당대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 이야기다. 결혼하고도 칼로의 친동생까지 건드린 ‘불륜남’이다. “그래도 끝까지 디에고를 사랑하는 칼로를 이해할 수 있어요. 한 사람만 사랑하는 일, 내 삶엔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마음을 이해해요. 저도 20대 땐 그랬죠. 몸이 자유롭지 않았고 서서히 죽어가던 칼로에게 소중한 것은 그림과 옆에 있는 디에고뿐이었을 거예요. 칼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곁에 남아 많은 걸 해준 사람이기도 했고요.”

뮤지컬 ‘프리다’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 9명. 주인공 ‘프리다 칼로’는 배우 최정원, 김소향이 맡는다. ‘레플레하’ 역은 전수미, 리사, ‘데스티노’는 임정희, 정영아, ‘메모리아’는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이 맡는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프리다’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 9명. 주인공 ‘프리다 칼로’는 배우 최정원, 김소향이 맡는다. ‘레플레하’ 역은 전수미, 리사, ‘데스티노’는 임정희, 정영아, ‘메모리아’는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이 맡는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올 상반기 ‘프리다’, ‘리지’ 등 여성 배우들만 등장해 주체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뮤지컬이 연달아 개막해 화제다. 그러나 남성 중심 뮤지컬과 여성 중심 뮤지컬은 아직 시장 규모부터 다르다. ‘프리다’의 흥행을 여성 배우의 설 자리가 늘고 있다는 희망으로 볼 수 있을까.

“여성 관객이 남성 중심 극에 몰리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저도 남자가 좋으니까요. 하하. 초반엔 빈자리가 많았는데 2주가 지나니까 SNS에서 입소문이 나더라고요.” 김소향은 “관객들이 지금까지 사회가 요구했던 ‘조신하고 조용한’ 여성상을 깨부수는 작품에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남녀를 떠나 요즘 관객들은 선을 지키되 솔직하게 자기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배우와 작품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창작뮤지컬 ‘프리다’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김소향(42)이 25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창작뮤지컬 ‘프리다’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김소향(42)이 25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소향은 창작 뮤지컬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배우다. 앞으로도 창작 작품에 더 비중을 두고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라이센스 작품에 대한 열망은 별로 없어요. 그보다는 좋은 창작을 하거나, 했던 작품을 다시 해서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창작 작품은 캐릭터에 제 정체성이 녹아들잖아요. 그게 참 기뻐요. 작가가 자식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랄까요. 만들 땐 고통스러워도 작품과 제 이름이 함께 가는 걸 볼 때 배우로서 행복하죠.”

다음에는 더 큰 무대에서 ‘프리다’를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소극장에 잘 맞는 공연이지만 저희 네 명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조금 비좁은 것 같아요. 다음엔 1300석 무대에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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