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고] 저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 승인 2022.04.29 08:35
  • 수정 2022-04-29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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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일곱, 미운 오리 새끼

우리 집은 딸만 일곱인 딸 부잣집이다. 종갓집 외동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아들 한 명 두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다. 나는 일곱째 막내로 태었는데 아들도 아니고 딸인데다 중증의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다. 아들이 아닌 딸인 것도 이미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할 처지인데 중증장애까지 가졌으니 미운 오리 새끼가 태어난 셈이다.

어렸을 때 나는 꿈이 없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 되겠다는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 집에서 이동할 수 없었기에 제대로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다. 기대 받지 못한 삶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서 1년에 한두 번 외출도 못하는 삶이 너무 답답했다. 집에서 독립하는 게 인생 최고의 꿈이 되었다. 독립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10개의 계단만 있는 집에서 이동할 수 없었고,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 현장에도 나설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무능함을 느끼며 좌절을 거듭해야 했다.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차별을 내뱉으며 저항의 언어를 쓰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바깥세상으로 나오며 장애인 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에서 만난 동료의 제안으로 장애여성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활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 단체 활동가들은 꿈만 꾸던 나의 독립을 지지하며 지원해 주었다. 그 당시 시범적으로 실행되던 활동지원 시간은 한 달 40시간 미만이었다. 모든 일상에서 남의 손이 필요한 내게 한 달의 40시간 지원은 매일 아침 무사히 눈을 뜬 것에 감사하며 목숨을 내놓는 일상을 보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의 한두 번도 외출을 못했던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장애여성 단체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을지 몰랐다. 같이 활동을 시작한 활동가들도 내게 무슨 업무를 배치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상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경계선을 넘나들었고, 서로의 차이와 속도를 배워갔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도전과 실패를 통해 찾으며 조금씩 나의 장애와 경험을 저항의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나의 노동이 되었고 격하고 뜨거운 투쟁이 되기도 했다.

현재 나는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삶을 일구어내어 가족 내에서도 평생 무거운 짐처럼 책임져야할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은 나 혼자 이루어낸 게 아닐 것이다. 나의 장애를 인정하고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함께 묵묵히 견뎌내 줬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나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처럼 기대 받지 못한 많은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이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날이 더 많아지길 바라고 있다.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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