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공천 지우고 추천보조금은 챙기는 정치권
여성공천 지우고 추천보조금은 챙기는 정치권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2.04.21 08:34
  • 수정 2022-04-21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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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세.연 “여성 공천 의지 없음에도
보조금은 챙겨가겠다는 심보 드러낸 개악”
“보조금 대신 패널티 주는 것도 방법”
김태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태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공천에 소극적인 거대 양당이 ‘여성추천보조금’ 제도를 자신들이 받기 유리한 방식으로 개정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거대정당에 유리한 보조금 지급 대신 국고보조금 삭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성추천보조금’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시도의회의원 선거 등에서 여성후보자를 일정 비율 추천하는 정당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종래엔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 후보로 추천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20%이상~30%미만, 10%이상~20%미만)를 나눠 전자를 충족시키는 정당이 없을 경우 후자를 충족하는 정당에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 이상을 여성 후보로 공천한 모든 정당에게 추천비율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법안 개정 이유로는 '현행법은 여성 후보자를 전국지역구 총수의 30% 이상 추천한 정당이 있는 경우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 비율을 넘기지 못하는 정당은 여성 후보자 추천을 위해 노력하고도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정치자금법 제26조(공직후보자 여성추천보조금) 일부개정법률안(정치개혁특별위원장 대안)은 지난 15일 의원 195명 찬성으로 통과했다. 그러나 여성후보 공천 의지가 없음에도 보조금은 챙겨가겠다는 심보를 드러낸 개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난 16일 “거대양당은 여성 후보 공천 30%를 지킨 적이 거의 없고 그 비율을 지키기 위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려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노력하고도’라는 말을 쓰는 것은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번 개정안으로 여성후보를 10% 이상만 공천하면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거대양당은 지금까지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여성후보를 30% 이상 공천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도 이번 개정에 대해 3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상임대표는 지난 19일 트위터를 통해 “첫째는 지역구 여성후보자 공천을 늘리자는 입법취지가 무색해졌다. 거대양당이 지역구 여성후보자 공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고, “둘째는 소수정당엔 불리한 개악이다. 어느 정당이든 공천하는 지역구 후보 중 일정 비율 이상 여성 후보를 공천하면 보조금 대상이 되도록 개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할당제 취지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보조금만 챙겨가는 몰염치 정치”라며 “성평등을 위해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대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은 이러한 개악에 맞서 정치자금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추천보조금이 여성후보 공천 비율을 증가시키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해외에서는 재정적 제약을 했더니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높아진 사례가 있다. 아일랜드는 2012년 여성과 남성 각각 최소 30% 이상 공천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정부 보조금의 50%를 삭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이전보다 7%p 상승했다(Ohman 2018). 프랑스는 2000년에 후보의 남녀동수 출마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동시에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초기에는 여러 정당들이 정부 보조금을 삭감 당해도 남성을 후보로 공천하는 선택을 했으나 국고 보조금 삭감 비율을 증가시킨 법 개정 이후에 치러진 첫 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이전보다 약 8%p 증가했다(IPU 2021).

한국도 선거보조금이나 경상보조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권수현 여.세.연 대표는 “인센티브보다 패널티를 부여하는 방식이 여성 공천에 조금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몇몇 전문가들은 후보 추천이 적은 기초·광역단체장을 적용 대상으로 해 추천 비율에 따라 보조금을 배분하고, 의원 급은 여성후보 공천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선거보조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 문제는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청년추천보조금도 같은 구조”라고 덧붙였다.

여성 공천 할당과 관련 공직선거법 제47조(정당의 후보자 추천) 개정이 거대 담론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연일 격화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전쟁이 공직선거법 개정 등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나왔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책위원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개혁 이슈가 모든 정국 현안을 빨아들이고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신명 한국여성의정 상임대표는 “공직선거법 개정은 적어도 2월엔 논의했어야 했다”며 “개정에 입김을 가해야 하는 여성계 또한 뜻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신 상임대표는 “사실상 이번 지선에서 여성 공천을 기대하긴 어렵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그럼에도 이번 지선에서 서울에 박영선, 경기에 김은혜를 각 당에서 전략 배치한다면 여성 공천 흐름이 앞으로 조금씩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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