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이의 마음대로 책 읽기] 20대 여성, 한국 정치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다
[박선이의 마음대로 책 읽기] 20대 여성, 한국 정치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다
  • 박선이 기자
  • 승인 2022.04.20 09:42
  • 수정 2022-04-22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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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자』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지음
시사IN저널북 펴냄

 

『20대 여자』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지음 / 시사IN저널북 펴냄
『20대 여자』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지음 / 시사IN저널북 펴냄

대한민국 정치 현상에서 20대 여성이 지금처럼 주목받았던 일이 있을까?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20대 여성들은 결정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20대 남녀를 편 가르고,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이해에 꿰맞추는 저렴한 정치는 애초에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이대남(20대 남성)’에서 시작했지만,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 투표를 지역, 성별, 연령에 따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대남보다는 이대녀가 실제로 더 뚜렷한 정치적 현상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10% 이상 뒤지던 더불어민주당이 실제 투표에서는 0.7%포인트 차로 따라잡은 데는 선거 직전 확실하게 결집한 이대녀-좀 더 넓게는 2030 여성들-의 지지가 주효했다는 데 이론이 없어 보인다.

『20대 여자』는 시사주간잡지 <시사IN>의 전국적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20대 여성을내면과 형상을 그려낸다. 2021년 7월30일부터 8월2일까지 전국의 18세 이상 남녀 2,490명에게 정치, 경제, 교육, 복지, 노동 등 다양한 내용을 설문조사 한 결과 중 20대 여성을 ‘읽을’수 있는 데이터를 추출해 이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가능성을 분석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대녀들의 41.7%(약간 동의 25.1%, 매우 동의 16.6%)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여성들(19.7%)의 2배가 넘고, 30~60대 여성 평균(23.2%)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압도적이다.

『20대 여자』는 이대녀들의 이러한 페미니스트 정체감을 ‘감정온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국승민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정치학과 교수). ‘감정온도’는 0도(매우 부정적)에서 100도(매우 긍정적)까지로 표현되며 정치적 태도나 투표 행태에 큰 예측력을 보이는데, 이번 조사에서 이대녀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느끼는 감정온도는 53.3도로, 전체 평균 32.1도 보다 뚜렷하게 높았으며, 가장 낮은 이대남의 14.3도와 비교하면 39도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이대녀들은 한국 사회구조를 성차별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결혼·출산이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저해할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많은 분야에서 진보적이다. 성별로나 연령별로나 가장 진보적인 그룹이다. 성장보다 복지가 우선이고, 경제 성장보다 환경보호가 먼저이며, 사회적 소수자(성소수자 포함)에 대해 진보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안보와 시장 경제 이슈에서는 대북 제재와 압박을 지지하는 비율이 지원과 대화를 지지하는 비율과 비슷했고, 시장에 대해서도 정부 규제 강화보다 완화가 더 우세했다. 이들은 가장 우호하는 정치세력으로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세력’을 꼽았다. 이대남을 비롯해 전 연령별·성별 집단이 ‘법과 사회질서 확립을 우선시하는 세력’을 가장 선호한 것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

이대녀와 이대남의 페미니스트 감정온도 차가 현실적으로 확인되는 사례 중 하나가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대녀들의 87.6%가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답한 데 반해 이대남들은 50.0%가 같은 답을 했다. 더 큰 차이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서 나타났다. 이대남들이 성범죄 인식 항목 중 가장 ‘불안하다’고 답한 것은 (성범죄) 무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의도와 상관없이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될까봐 불안하다”(54.8%)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부당하게 몰리고 있다”(73.6%)고 답했다, 같은 문항에 대해 이대녀는 22.7%만이 동의했다.

이처럼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대남/이대녀의 페미니스트 인식, 성범죄 인식의 간극을 뚫고 들어간 것이 바로 지난 20대 대선이었다. 이대남에게 집중한 국민의힘 선거전략에 흔들렸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페미니즘 정책 때문에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는 남초 커뮤니티 글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고, 페미 채널이라는 이유로 유튜브 출연을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운동 막판에 민주당은 N번방 사건을 터뜨린 추적단불꽃의 ‘이대녀’ 박지현을 캠프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으로 영입하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국민의힘과 분명한 차이를 과시했고, 실제로 득을 보았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개딸'로 지칭되는 지지자와 SNS로 소통하는 모습. 사진=커뮤니티 캡쳐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개딸'로 지칭되는 지지자와 SNS로 소통하는 모습. 사진=커뮤니티 캡쳐

26만6,880표 차이로 대선에 진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현 민주당 상임고문)에게 이대녀는 엄청난 정치 자산이며 미래를 위한 자본이다. 선거 당일 지상파 방송3사 공동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대녀 득표율에서 이재명 후보가 58.0%로, 윤석열 당선자의 33.8%를 훨씬 앞질러나갔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이재명 고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한 여성들의 목소리에서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스스로를 ‘개딸’(성격이 드세고, 기가 세고, 할 말은 하는 딸!)이라고 칭하는 여성들이 이재명 고문을 ‘아빠’ ‘재명 아빠’라고 부른다. “아빠, 저 개딸인데요” “미안하다는 말 금지, 사랑한다는 말만 해주세요. 원래 개딸들은 그런 말 더 좋아해요”라고 보낸 문자에 이고문은 “우리 개딸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가 감사해요, ♡♡♡♡”라고 답하고 있다. 이러한 덕질, 혹은 팬질 현상은 『20대 여자』에서 드러난 이대녀들의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거리가 먼 가부장적 상징들로 가득하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치적 발언 대신, 사랑만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이를 예전 TV드라마 캐릭터에 대입해서 가볍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여성을 옭죄는 가장 구조적이고 심각한 차별의 뿌리라고 인식하고, 일상에서 가부장적 요소와 시종 부딪혀온 내게, 주요 정치인과 2030 여성을 아빠-딸 관계로 환원하는 언어는 실로 기괴해 보인다. 『20대 여자』가 꼼꼼하게 읽어낸 이대녀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 구도를 바꿀 젠더 정치,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꽉 채워 넣은 사람들이다. 의사 가부장제에 속박되지 않는, 진정한 자기 정체성의 정치 파워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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