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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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드 아웃. 섹시 눈빛 아워. 환상의 레드 립"

온 나라에 국적 불명 용어가 판친다. 공공언어와 간판, 뉴스, TV프로그램 자막 할 것 없이 한글과 영어,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언어가 뒤범벅이다. 특히 예능프로그램 자막이나 연예 관련 뉴스 용어는 국적을 상실한 지 오래다. 남녀를 불문하고 섹시도 모자라서 ‘눈빛 아워’라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가져다 쓴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성 사진 아래엔 ‘강렬한(환상의, 유혹의) 레드립’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여기저기 온갖 외국어를 가져다 쓰는 것도 부족해 물건에 쓰이는 ‘솔드 아웃’(매진, 품절)같은 단어를 사람에게 붙이고, 빨강 파랑도 굳이 레드 블루라고 써댄다. 입술은 언제부터 립이 됐는지 알 수 없다. 새로 생긴 정보통신 용어여서 미처 적당한 우리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아닌데 닥치는 대로 외국어를 늘어 놓는다.

언어는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단계를 넘어 그 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문해력은 얼마나 될까. 청소년들이 사흘을 4일인 줄 알았다거나 가제(임시제목)의 뜻을 몰라 가재(갑각류)라고 이해한다는 우스갯소리같은 이야기가 엄연한 현실이라는 마당이다.

이런 판에 누구누구가 ‘솔드 아웃’ 이라거나 ‘눈빛 아워’ ‘레드 립’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면 과연 한글이 우리말인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솔드 아웃은 알고 사흘은 모르는 층과 사흘은 알고 솔드 아웃은 모르는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기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우주인끼리 소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게 틀림없다.

한글은 소리글자다. 아무 말이나 한글로 써 놨다고 누구나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1080세대 모두 알고 느낄 수 있는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려는 범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문해력 증진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갈등과 차별, 오해와 혐오, 분리주의를 해소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방송 자막이나 사진 설명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저절로 눈에 띈다. 무심코 보게 되는 만큼 더더욱 쉽고 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는 게 필요하다. 연예 관련 뉴스는 더하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인 수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에 갖다 붙이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솔드 아웃’보다는 품절이 낫고, ‘아워’는 시간, ‘레드 립’은 ‘붉은 입술’이라고 쓰는 게 마땅하다. 말의 느낌 상으로도 레드 립보다 붉은 입술이 더 감각적인데 굳이 레드 립이라고 써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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