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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아줌마 성서 공부 시간에는, 먼저 지난주에 공부한 것을 복습하고 이어서 새로 읽은 성서의 내용 중에 특별히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을 소개하면서 차례로 자신이 묵상한 것을 나누게 된다. '성서 100주간'이라는 천주교 성서 공부 모임인데, 내가 개신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입학을 허락해 주셔서 1년째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특히 묵상시간에는 성서의 구절을 내 생활과 직접 연결시키기 때문에, 그 내용이 너무도 생생하고 절실해 이야기를 하면서 다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날은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인 선배 아줌마가 첫 순서였다. 성서를 읽는데, 앞뒤로 연결되는 사건과 상관없이 “그대를 잘 보살펴드리리다” 하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그 집에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오래도록 자리를 보전하고 계신데, 우리가 다 같이 모여 점심식사를 할 때도 집으로 달려가 어머님 점심을 챙겨드리고 다시 나올 정도로 정성껏 돌봐드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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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정말 미웠다고 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가 며느리 가슴을 몹시 아프게 하던 어머니가 몸마저 못 쓰고 누워 계시니까 그렇게 미울 수가 없더란다. 기저귀를 갈 때면 같은 여자지만 수치심이 끓어올랐고, 막 화가 나서 거칠게 대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데 정신이 들락날락하던 어머님이 멀쩡한 목소리로 마치 다 알고 부탁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더란다.

“잘 좀 해주세요!”

순간 가슴이 뜨끔하면서 후회가 밀려들었다고 했다. 내 손으로 돌봐드리지 않으면 한시도 사실 수 없는 분, 이런 분께 미움이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 부모에 대한 당연한 돌봐드림인데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요즘도 시어머니는 이따금 생각났다는 듯이 “잘 좀 해주세요!”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이 며느리는 아예 먼저 “어머니, 잘해 드릴게요” 하면서 기저귀를 갈아드린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같이 웃기는 했지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늙어 몸을 움직이게 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생각났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그분의 남은 생이 떠올랐고, 어머니를 향한 미움을 착한 마음과 신앙의 힘으로 넘어서서 자신에게 맡겨진 귀한 생명으로 받아들인 며느리의 그동안의 고생이 가슴 아팠고, 시어머니를 향한 지금의 그 정성과 사랑이 고마워 같이 웃으며 울었다.

주위를 둘러보기 전에 나 자신만 봐도 가까이 계시는 내 부모님께 잘해 드리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걱정스러워 건네는 말씀은 괜한 간섭과 잔소리로, 몰라서 물어보시면 답답해하고 짜증스럽게 대답하고….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도 적당한 거리와 정도를 지켜야 하는데, 이미 끈끈하게 얽혀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일까. 아니면 내 부모님만은 멋있게, 건강하게, 총기 있게, 그래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기대 때문일까. 다른 사람에게 하는 친절함과 상냥함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내 부모님께 해드리면 우리는 정말 효자, 효녀, 효부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잘 좀 해주세요”는 치매 걸리신 그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식에게 다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꽁꽁 숨겨놓은 모든 부모님들의 속내가 아닐까. 그러니 노인복지를 한다고 돌아다니면서도 내 부모님을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나는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식칼이 제 자루 못 깎는 이치를 날마다 실감하면서, 누가 나한테 “노인복지 내세우지 말고 먼저 네 부모님께나 잘해라” 할까 봐 오늘도 무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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