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무시하면 박자치 탈출 불가
마음 앞서면 넘어져, 가끔 멈춰서야

‘뜨거운 싱어즈’(JTBC) 출연자들이 최종 목표인 합창에 앞서 기초훈련에 여념이 없습니다. 4분의 4 박자를 익히려 음식 이름으로 랩을 해보는 연습도 합니다. “로제/ 로제떡복/ 이와김말/ 이”, “호박/ 고/ 구마.” 가장 기본적인 박자지만 맞추기 쉽지 않습니다.

악보를 놓고 노래를 배워 본 사람은 압니다. 음정도 음정이지만 박자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박자를 따라가려면 ‘로제떡복/ 이와김말/ 이’ 식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맞춤법에 맞게 발음했다간 박자를 놓치니까요. 4분의 3박자일 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 신다’식으로 하게 되는 거지요.

엇박자일 경우엔 더 심각합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얼마나 쉬고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 헤매는 사이에 반주는 흘러갑니다. 일단 박자를 놓치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져 나머지 부분은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맙니다. 망하는 거지요.

뒤늦게 지인을 따라 노래교실에 가기 전까진 제 노래실력이 괜찮은 줄 알고 살았습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엔 박자가 별로 문제 되지 않았고, 노래방에선 손가락 표시에 맞춰 부르면 되니까요. 음정은 맞고 고음도 웬만큼 가능하니 ‘이만하면’ 식의 자부심을 가졌던 겁니다. 학창시절이나 이후 각종 서류의 ‘취미’란에 ‘노래 부르기’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혼자 노래를 하며 삭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노래교실에서 악보대로 부르라고 하니 생각대로 안되더군요. 걸핏하면 반 박자 빠르게 들어가거나 늦게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꾸 그러니 참 난감했습니다. 악보공포증이 생길 지경이었습니다. 노래할 순서가 되면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슴은 두근거리고 마이크를 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배운다고 배우는데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퇴보하는 것같았습니다. 박자만 문제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악식 발성이다’, ‘진성과 가성을 구분하라’ 등 지적이 이어졌지요. 점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땐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선생님이 3년 내내 이유도 안 알려준 채 코오르위붕겐으로 계명 읽기만 시켰고, 고등학교에서도 노래하는 법에 대해선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긴 시간 제멋대로 부르다 발성법부터 익히자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고민 끝에 궁리한 게 ‘드럼을 배우자’였습니다. 드럼을 배우면 박자감이 좋아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겁니다. 수소문 끝에 집에서 4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곳에 있는 드럼학원을 찾아냈습니다. 지켜 보던 딸이 함께 배우겠다고 해 같이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로 노래교실은 중단됐습니다. 시원섭섭했지요. 다행히 드럼은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은 1주일에 한 시간. 연습은 아무 때나 하면 됐습니다. 악기라곤 생전 처음 배우는데다 연습도 제대로 안하니 실력은 잘 늘지 않았습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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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을 배우면서 거듭 깨달았습니다. 제가 쉼표를 자꾸 놓친다는 사실을요. 보통 반 박자인 쉼표가 한 박자가 될 때 증상이 심해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습관적으로 반 박자만 쉬는 거지요. 노래할 때도 그랬는데 드럼 칠 때도 똑같은 버릇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박자가 틀리니 연주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노래도 드럼도 쉴 때 쉬어야 다음 부분을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데 쉬지 못하니 숨이 가쁘고 어그러집니다. 쉼표는 ‘이쯤 했으면 잠시 쉬면서 숨을 가다듬으라’고 있는 건데 무시하고 앞으로 내달리니 탈이 나는 거지요.

왜 쉬지 못할까. 왜 자꾸 쉼표를 건너 뛸까. 제 경우엔 자신감 부족과 초조함이 원인인 듯했습니다. 자신감이 없으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여유가 없고, 여유가 없으니 초조하고 급한 마음에 무작정 앞으로 나가는 겁니다. 어떤 일이든 잘 안될 때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원인을 살피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엉클어지는 수밖에요.

노래와 드럼 공부를 통해 새삼 알게 됐습니다. 쉼표가 얼마나 중요한 지요. 마음만 앞서서 되는 일은 없다는 것도요. 달리기를 할 때도 발보다 마음이 앞서면 고꾸라집니다. 드럼 공부는 평생 ‘오늘보다 나은 내일’ 운운하던 제게 쉼표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답답할수록, 마음대로 일이 안풀리고 울화가 치밀수록 뭔가 하려고 기를 쓰기보다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요즘엔 악보의 쉼표 부분에 빨간펜으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칩니다.  “쉬어야 한다”를 되뇌이면서요. 쉼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동안 드럼 실력도 조금이나마 향상되는 듯합니다. 훈련의 힘이지요. 마음의 쉼표도 건너뛰지 않으려 애써 봅니다. 마음에도 숨 쉴 틈을 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스스로를 제어하기 힘든 상태에 이른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드럼 덕에 예기치 못한 덤도 얻었습니다. 딸과의 대화가 많아진 게 그것입니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말할 기회가 적었는데 드럼학원을 오가는 동안 평소 못하던 얘기를 하게 된 겁니다. 서로 속을 터놓으면서 크게 웃는 일도 늘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삶과 마음의 쉼표를 찾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초를 밝히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래든 연주든 잘하려면 쉼표에 집중해야 하듯 삶과 마음도 균형을 유지하려면 숨 가쁘지 않게 쉬고 멈추는 노력이 필요한 것같습니다. 사람은 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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