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경증’ 장애등급제 부작용 다룬
실화 바탕 영화 ‘복지식당’ 14일 개봉
장애인등급제‧이동권‧복지제도 등
다양한 인권 문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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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실패, 전동 휠체어 할인 거부, 이동 보조 기구 제공 거절, 장애인 콜택시 이용 불가, 활동 보조 서비스 이용 불가... 영화 복지식당’ 속 장애인 ‘재기(조민상 분)’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이 모든 일은 장애인 등급 심사 하나 때문에 발생했다. 재기는 혼자 걷기도 어려울 정도의 중증 장애인이지만 국가에서 그를 경증 장애인인 5급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정재익 감독의 실화 바탕 영화
“후천적 장애인, 사회 도움 없이 자립하기 힘들어”

6일 용산 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재익 감독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인디스토리
6일 용산 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재익 감독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주)인디스토리

영화 복지식당’은 4급 장애인인 정재익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증상은 중증이지만 장애인 등급 심사 과정에서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됐다. 행정심판을 통해 등급재심사를 받아보려 했지만, 결과는 5급에서 4급으로의 전환. 더더욱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된 꼴이었다.

2019년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지가 시작됐지만 ‘중증’과 ‘경증’의 분류는 남아 있다.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된 정재익 감독은 아직도 대다수의 복지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극중 은주 역의 한태경 배우는 “감독님이 서울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 어제만 해도 함께 이동하는데 (일반 택시에) 승차 거부를 계속 당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공동 연출한 정재익 감독과 서태수 감독은 2019년 장애인 단체 영화제작 워크숍에서 만났다. 서태수 감독은 그 워크숍에서 정재익 감독의 경험이 담긴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그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영화 속 재기를 어떤 인물로 묘사하고 싶었는지 묻자 정재익 감독은 “재기는 나와 같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 정책적 도움 없이 자립하기 너무 힘들다. 재기를 통해 그런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장애인 세계에도 권력과 선악 존재
“장애인보다 장애인 ‘가족’이 약자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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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호'는 장애인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같은 장애인을 착취하는 인물이다 ⓒ(주)인디스토리

참혹한 현실에 맞닥뜨린 재기는 자신을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주고 일자리도 주선해주겠다고 나서는 장애인 ‘병호(임호준 분)’를 만나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병호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같은 장애인들을 착취하는 인물로, 재기 역시 그에게는 희생양일 뿐이다.

영화는 장애인 사회 또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졌다는 것 외에 비장애인들과 다를 것 없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장애인은 선한 약자’라는 시혜와 동정의 시선에서 한 발짝 벗어나기를 시도한다. 서태수 감독은 “병호라는 인물은 장애인 사회에 존재하는 기관, 단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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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의 사촌누나 '은주'는 그의 사고 이후 돌봄노동을 전담한다ⓒ(주)인디스토리

장애인인 병호보다 약자로 비치는 것은 재기의 사촌 누나 은주(한태경 분)다. 그는 5년 전 남편을 암으로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식당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재기의 사고 이후 그의 돌봄을 전담한다.

서태수 감독은 ‘장애인 사회에서 (오히려 비장애인인) 장애인 가족들이 약자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책적으로 직계가족이 활동지원사를 할 수 없어 장애인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 은주를 통해 (그런 현실을 표현한 건) 의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활동보조는 활동지원사가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신체활동, 이동보조 등 자립 생활을 지원해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활동지원사가 경증 장애인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많은 중증 장애인 가족들은 활동지원사처럼 가족을 지원하면서도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활동보조사 자격을 따 급여를 받으며 돌봄 노동을 제공하기를 원하는 가족들도 있다.

영화는 행정심판을 위해 법정에 선 재기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끝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재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재익 감독은 이를 통해 ‘당신이 재기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서태수 감독은 이 장면 속 계단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상황이 계단 때문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사회의 많은 시스템이 비장애인에게는 불편함일 뿐이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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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용산 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복지식당 감독들과 배우들이 얘기하고 있다.ⓒ(주)인디스토리

영화는 모두 제주도에서 촬영됐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스텝이 함께 모여 제작했다.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생을 모색한 셈이다. 영화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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