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인생에 ‘사이다’는 없다
여자의 인생에 ‘사이다’는 없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4.09 10:19
  • 수정 2022-04-09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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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두 번째 소설집 『돌보는 마음』 펴낸 김유담 작가
돌봄을 ‘여성의 의무’ 취급하는
한국 사회 부조리 그려
“기혼·유자녀·노인·비수도권 등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 하고파”
김유담 작가가 1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유담 작가가 1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내 일을 포기할 정도로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안(安)」 중)

“남자는 필요 없어.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낳고 싶어.” (「연주의 절반」 중)

소설 속 여성들은 단호히 선언한다. 시어머니의 간섭과 요구, 며느리·엄마의 삶에 충실하라고 종용하는 남편에게 질린 ‘나’는 이혼을 통보한다. 이혼 후 홀로 살며 그림을 그리는 연주는 기증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유튜브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일하랴, 아이 키우랴, 가족들 챙기랴 바쁜 여성들, 의무와 희생으로 점철된 ‘여자의 인생’을 갑갑해 하면서도 순응하고, 또 주체적으로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 나왔다. 김유담(39)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이다.

르포 같은 소설들이다. 작가는 앞서 지방 출신 여성 청년의 서울 생존기 『탬버린』(창비)으로 2020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당대의 실제적인 삶을 직시하면서 고유의 리듬과 정동을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엔 누군가를 돌보는 여성들의 삶을 세밀화처럼 그렸다. 할머니, 엄마, 딸, 워킹맘, 전업주부, 비혼모 등 다양한 세대·배경·지역의 여성들이 나온다. 젊어서부터 돌봄을 도맡은 여성이 나이 들어서도 돌봄을 떠안는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면 가부장제의 모순이 보인다. 남성들은 잘 모르는, 여성들만 겪는 교묘한 가족 내 위계와 억압을 포착하는 대목이 통쾌하고 서늘하다. 

“...나는 무엇을 얻는 거지? 공의 할머니가 공의 어머니에게 물리고, 공의 어머니가 내게 물리는 삶. 그러면서도 요즘 여자들은 옛날에 비해 팔자가 늘어졌다는 평가를 윗세대 여성에게 받는 삶……. 그것은 대물림이라기보다는 ‘되물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아니면 되풀이나 되갚음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나는 뒷덜미를 세게 물린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안(安)」의 한 대목이다. 2021년 제1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으로 “가장 섬세하고 인간적인 여성 서사”라는 평을 받았다. 

돌보는 마음(김유담/민음사) ⓒ민음사
돌보는 마음(김유담/민음사) ⓒ민음사

소설은 노년 여성의 목소리에도 주목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길 요구받아온 세대, 아들을 편애하고 며느리를 들들 볶으며 여성혐오를 내면화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도 남편, 손녀, 치매 걸린 아버지까지 돌보는 여성, 황혼이혼을 결심한 여성의 이야기도 있다. 

“페미니즘, ‘여성서사’가 강세를 띠면서 비혼·싱글 여성의 목소리가 조명받았잖아요. 자칫 그들과 기혼 유자녀 여성들을 갈라치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다르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대도시 중산층의 삶만이 아니라 팬데믹 속에서 주목받지 못해 소외된 지역민들의 삶, 페미니즘의 ‘ㅍ’도 모르는 노년 세대의 삶도요.”

“‘사이다’를 원하는 독자들에겐 ‘고구마’ 같을 것”이라며 웃었다. 지난해 계간 창작과비평에 「안(安)」이 실렸을 때 그런 피드백을 여럿 받았다. 주인공은 애초에 왜 결혼했느냐, 왜 진작 이혼하지 않았느냐는 불만 섞인 지적도 있었다. “인생은 복잡하고, (일부 독자들의 기대처럼 불편한 관계를) 다 끊어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래디컬한 목소리로 쓸 수도 있겠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펼쳐 보고 싶었어요. 제 소설을 읽은 분들이 주변과 삶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해요.”

김유담 작가가 1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유담 작가가 1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많은 작가들처럼 소설로만 먹고 살기 어려워 다른 일을 병행해왔다는 그는 “원고 청탁을 받을 때마다 그 순간 제게 가장 절박한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대학을 나와 회사에 다니면서도 작가의 꿈을 잊지 못했다. 30대 초반, 6년간 일한 직장을 나와 습작에 몰두했다. 2년 만인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8년 겨울 아이를 낳았다. 출산·육아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돌보는 사람, 쓰는 사람. 아이가 태어난 후로 내게 그 두 가지 외의 다른 정체성은 허락되지 않았다.”(‘작가의 말’ 중)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4~5시간씩 화장실도 안 가고 글을 쓴 날도 있다. 지쳐서 입안이 다 터져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상이 너무 고마웠”다. “애 키우며 집에서 일한다니 참 좋겠다, 우리 딸도 그랬으면” 하던 한 어르신의 말에 쓴웃음만 지은 얘기도 들려줬다. 작가 자신과 주변 여성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을 하나씩 모아 낸 책이다.

차기작은 올 하반기 나올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젊은 여성이 배우 일과 무관한 회사에 들어가서 겪는 직장 생존기다. 『탬버린』, 『이완의 자세』을 잇는 ‘청춘 3부작’이다. 김 작가는 “앞으로 아주 시사적인 소설부터 단편의 미학에 집중한 소설까지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 ‘여성 예술인의 돌봄’에 대해서도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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