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율 높다고 국가가 이혼 통제?

여성계 “막고 보자는 행정편의주의” 비난

           혼인 전후 상담·전문인력 확보 선행돼야

최근 정부가 이혼 전 상담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이혼율이 5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뒤따르면서 여론의 공감도 컸다. 하지만 이혼 전 상담, 이혼 숙려 기간 제도화 등 잇단 보건복지부의 정책이 이혼 방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제도의 취지와 실효성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월 26일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에 2004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며 “상담을 거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인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전국 시군구에 설치될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이혼인증서를 받아야 법원에서 이혼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충동 이혼을 막기 위해 3∼6개월의 이혼 숙려 기간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우선 “우리나라 이혼의 80%가 5∼10분 안에 끝나는 협의이혼이어서 충분한 준비 없이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진국들처럼 이혼에 앞서 자녀문제, 재산문제, 이혼 후 대책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심리적·정신적·법적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곽 소장은 “하지만 복지부에서 발표한 이혼을 막기 위한 이혼 전 상담은 전근대적 발상”이라며 “이혼에 대한 충분한 이해로 이혼을 신중하게 고려하게 돼 일부 이혼을 예방하는 효과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김영애 사무국장 역시 “이혼 전에 이혼 후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상담은 필요하다”면서도 “복지부가 건강가정기본법의 정신에 바탕해 이혼을 막아보려는 취지에서 하는 이혼상담은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가족과성상담소는 이혼 전 강제상담은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이혼허가제'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부 고문변호사인 이명숙 변호사는 “예방이나 사전진단 없이 이미 암에 걸린 환자를 데려다 놓고 회복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미봉책에 불과한 이혼 직전 상담보다는 혼인 전 상담이나 전체 결혼기간에 걸친 상담활성화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건강가정센터에서 상담을 맡은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도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르면 건강가정센터에서 활동할 '건강가정사'가 건강가정 유지 사업은 물론 관련 상담을 도맡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건강가정사' 제도는 일부 학과 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나왔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 출신학과 이외에 특별한 상담 경력이나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해 시범사업소에 지원할 예정인 1억원으로는 건강가정지원센터를 마련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해당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일이 힘들다는 게 상담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영애 사무국장은 “이혼 전 상담에는 여성 삶의 경험과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는 여성주의 상담을 기본으로 상담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들이 배치돼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의 건강가정기본법 취지로는 이러한 상담인력 확보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곽배희 소장 역시 “이혼 전 상담이 중요한만큼 복지부가 관련 부처들은 물론, 오랜 상담 경험과 전문상담 인력을 갖춘 민간기관들과도 충분한 협의를 거쳐 신중하게 제도를 마련해야 전시행정에 그치지 않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행중인 이혼 전 상담제는

외국선 갈등 최소화에 초점 우리나라 이혼소송에만 적용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혼 전 적게는 2∼3개월에서 길게는 18개월에 달하는 이혼숙려 기간을 두고 이혼상담명령을 법제화한다. 숙려기간 동안 자녀복리, 재산정리 등 이혼에 따른 다양한 문제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고 이혼과정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정신적, 심리적 상담을 받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사소송법에 재판이혼의 경우 조정전치주의를 채용한다. 판사가 가사조사관에게 조사를 명하거나 조정위원들이 참석하는 조정위원회를 열어 조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과 시간적 한계로 충분한 상담과 조정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평이다. 또한 조정기간을 거치지 않는 협의이혼이 전체 이혼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혼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를 위한 숙려기간과 상담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단, 상담전문가들은 가정폭력 등 시급히 이혼이 요구되는 경우는 예외 조항으로 다뤄야 한다고 덧붙인다.

구훈모 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은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이 극단에 이른 부부를 설득하고 조정하는 것이 힘들다”며 “조정까지 오기 전에 충분한 상담을 거친다면 화해하고 소송을 취하할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구 위원은 “사전상담제도의 목적은 절차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며 “상담을 통해 감정이나 관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법원에서는 재산이나 자녀양육 등을 조정하게 되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희 기자son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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