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관리자 교육·성희롱 개념 등 삼성그룹에 여성활용 매뉴얼 첫 도입

적응력 뛰어나 도전하는 일마다 척척 소화

“93년 신경영으로 삼성에서 처음 대졸여성을 대규모로 공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유니폼을 없앴는데, 당시 신입들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민소매, 배꼽티, 슬리퍼 같이 생긴 신발을 신고 출근을 했죠. 그 누구도 일하는 여자의 드레스 코드를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배울 선배도 없었어요.”

@A11-1.jpg

박현정(42) 삼성화재 경영기획팀 상무보는 삼성그룹 전체 1000여 명 임원 가운데 10명에 속하는 여성임원으로, 여성인력에 대한 인식이 다소 척박하던 시절 '여성인력 활용 프로젝트'를 맡아 이끈 인물이다. 선진기업의 여성인력 관련 정책을 벤치 마킹해 여성에게 적합한 직무 및 드레스 코드, 성희롱의 개념과 여성간부를 대상으로 하는 관리자 교육 프로그램 등을 그룹사에 처음 도입해 화제를 일으켰다.

박현정 상무는 삼성그룹에서 1%도 되지 않는 여성임원으로 커리어우먼의 대표적인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 박 상무는 지난 94년 여성인력 활용에 관한 매뉴얼을 삼성에 처음 도입했다. ▶

박 상무는 불과 10년 전의 상황을 지금과 비교해 “성희롱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한 시절”이라고 회상하면서, “여성인력 활용 프로젝트는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자부한다.

삼성이 세계 굴지의 그룹으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 중 하나는 바로 인사정책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 기업이 확보해야 할 것은 '국적과 성별을 초월한 우수한 인력'.

94년 삼성은 열린 인사개혁안을 통해 채용에서 성차별을 없애고 월급체계도 동등하게 맞췄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인 장치 마련보다 힘든 것이 남자 간부들의 의식을 바꾸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 일. 아무리 제도가 잘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을 실제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성공적인 정착은 장담하기 힘들다. 때문에 박 상무는 간부들의 의식 교육 병행 또한 강조했다.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제법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여자들의 성취를 폄하하려는 시선이 사회 도처에 남아 있다”며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를 이해해 줄 거라 기대하거나 노력하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포기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박상무는 1990년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와 교육부 산하 교육개발원에서 3년간 국가교육정책 등 연구에 몰두, 1994년 박사공채로 삼성에 입사한 다소 독특한 사례다.

입사 후 약 5년간은 삼성그룹 인력개발원 기획팀, 이 후 삼성화재 영업기획팀, 고객 DB팀장/CRM 파트장을 두루 거쳐 현재는 경영기획팀장을 맡아 회사의 중장기 전략, 기획 조사, IR, 신규사업 등의 일을 맡고 있다. 말하자면 박 상무는 지금까지 10년을 일하면서 거의 매해 같은 업무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박 상무는 “여성인력 개발부터 고객관리 프로세스인 마케팅 CRM 구축에 이르기까지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세팅'하는 모든 작업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또 성공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기본 원리를 꿰는 것과 그 원리를 제대로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며 “어떤 업무든지 '건전한 상식' '성실성' '책임감'을 기본으로, 그 위에 '전문성'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상무는 특히 여성들에게 “처음 일이 주어졌을 땐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췄다는 것이 경쟁력이 되지만, 올라가면서부터는 점차 '팀워크'와 '새롭고 다양한 것들'에 대해 시야를 넓히고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남자들 대부분이 조직에서 두루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팀워크와 새로운 것 등을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만, 여자들은 가사 및 육아 등으로 그러기 힘든 것이 안타까운 터였다.

박 상무는 또 “여성은 왠지 미덥지 못하고 책임감이 부족할 거라는 편견 때문에 책임 있는 업무를 맡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며 여성관리자 부재의 악순환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라며 “남녀 모두 직장 안팎으로 주변에서 책임감 있는 여자를 많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 편견을 깨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어린 딸들에게도 책임의식을 키울 수 있는 말을 많이 건네자는 제안도 잊지 않았다.

감현주 기자soon@

■ 박현정 상무의 어드바이스

1. 삶의 주안점을 정하라

박현정 상무는 후배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먼저 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일의 성취를 목표로 삼는다면 네트워크나 업무 등 남성들과 비교해 뒤처지지는 않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균형을 바란다면 일보다는 정서적인 충만감에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좋은 상사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박 상무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자, '좋은 상사와 좋은 직무를 만난 덕'으로 돌린다. 아무리 일에 대한 재능과 의욕이 있어도 표출할 기회를 줄 상사를 못 만나면 성공하기 힘들다. 직장에서 좋은 상사란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무조건 배려해 주는 게 아니라 좋은 업무를 주는 사람이다. 여성이라는 하드웨어를 넘어 그 속에 있는 능력을 제대로 파악해 중요한 업무와 일을 배울 기회를 주는 상사가 좋은 상사임을 명심하라.

3. 전문성·조직이해·다양한 경험을 쌓아라

박 상무는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전문성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전문성은 조직의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는 수단이다. 그 다음이 조직에 대한 이해다. 또한 회사의 입장에서 여성은 투명성 등으로 감사나 구매, 회계와 같은 업무, 업무 관계상 '갑'의 위치에 해당되는 업무나 숫자로 결과가 도출되는 업무가 적합하다고 덧붙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