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뉴시스·여성신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뉴시스·여성신문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자 미국 장관으로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23일(현지시각)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올브라이트가 암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1937년 5월 15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나치와 공산 정권을 피해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넘어왔다.

웰슬리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부유한 언론사 후계자 조셉 메딜 페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 행정부에서 중추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첫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활동하다가 두 번째 임기에 국무장관에 발탁됐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옹호했고 발칸반도에서 발생했던 대량학살 등을 막기 위해 동맹의 개입을 추진했다. 

그는 발칸반도에서 폭력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999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세르비아 전 지도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의한 이슬람 교도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 코소보에 개입하도록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특히 북한 비핵화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국무장관 재임 시절인 1999년 미국이 이른바 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페리 프로세스'를 발표하며 북미 관계는 점차 해빙기에 접어들었고, 같은 달 9월에는 대북 경제 제재 완화 조치가 발표됐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00년 7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백남순 당시 북한 외무상과 회동해 북미 고위급간 교류에 물꼬를 텄다.

같은해 10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과 논의 끝에 적대관계 종식, 평화보장 체제 수립, 미 국무장관 방북 등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었다.

또 북한 측과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까지 타진했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실제로 그해 10월 23~25일 미국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찾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올브라이트를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90년대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이 자신의 상원 경력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올브라이트는 어린 시절,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에서 가족과 함께 두 번이나 그들의 집을 떠나야만 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국제 상호의존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유엔에서 미국의 목소리가 되었고 이후 국무부에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열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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