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자체 심의 규정에
‘소송 등 분쟁 관련 광고인가’ 항목 신설 계획
인권위 “소송 관련 광고 모두 불허할 수도...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지난 4일 서울 전철 6호선 이태원역에 성소수자 군인 고(故)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광고가 붙어 있다. 그러나 지난해만 해도 서울교통공사는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이와 비슷한 광고 게재를 불허했다. ⓒ홍수형 기자
지난 4일 서울 전철 6호선 이태원역에 성소수자 군인 고(故)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광고가 붙어 있다. 그러나 지난해만 해도 서울교통공사는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이와 비슷한 광고 게재를 불허했다. ⓒ홍수형 기자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서울 대중교통 수단 내 성소수자 인권 광고를 여러 차례 거부해온 서울교통공사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군인권센터 등 32개 단체로 구성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021년 8월 9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 변 전 하사를 추모하고 복직 소송을 응원하는 광고를 게재하려 했다. 그러나 공사 심의 단계에서 참여위원 8명 중 5명이 반대해 불승인 결정이 났다. “허용할 경우 소송 진행 중인 사안들이 광고 도안으로 대거 접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심의에 참여한 외부 위원들은 “소송 중인 사안에 대한 내용이어서 광고 게재 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될 수 있고, 소송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 공사의 중립성 훼손 가능성이 있으며, 성 이념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인권위는 그해 10월 20일 공사 사장에게 “성소수자를 포함해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공사 광고관리규정 중 ‘체크리스트 평가표’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평가표 점검 사항 중 ‘의견이 대립해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를 개정 또는 삭제하고, 관련 점검 항목을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비해 광고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공사는 기존 체크리스트 중 ‘의견이 대립해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광고주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항목을 삭제하고, ‘소송 등 분쟁과 관련 있는 사안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가’, ‘공사의 중립성 및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가’ 항목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지난 1월 20일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이렇게 개정하면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신설 항목은 공사 광고규정 제7조(금지광고물 등)와 제29조(광고물 심의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고, 공사가 준용한 광고자율심의 규정 내용보다 더 좁게 해석돼 소송 관련 사안 광고라면 모두 게재가 불허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공사가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판단, 인권위법에 따라 23일 이 내용을 공표했다. 또 “공사가 성소수자를 포함해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사는 그간 ‘사회적 논란·민원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페미니즘·성소수자·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광고 게재를 여러 차례 불허했다. 2018년 ‘숙명여대 페미니즘 광고 금지’ 사건, 최근 고(故) 변희수 전 하사 복직 지지 광고 게재 불허 등으로 여성·성소수자 단체가 항의하기도 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 반대 민원을 피하는 데 급급해 너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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