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창작 뮤지컬 ‘프리다’
소아마비·교통사고 후유증을
예술로 승화한 프리다 칼로의 삶과 사랑
여성 배우들로 꽉 채운 뮤지컬
최정원·김소향 베테랑들 열연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노래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노래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대표 넘버 ‘코르셋’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김소향 배우가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대표 넘버 ‘코르셋’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코르셋과 목발을 난, 갑옷과 검처럼 들었어, 그러니 더 크게 웃어...”

뮤지컬 배우 김소향(42)의 노래에 객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창작뮤지컬 ‘프리다’ 속 주인공 ‘프리다 칼로’로 분한 그가 대표 넘버 ‘코르셋’을 열창하는 대목이었다.

평생 죽음의 그림자에 맞선 여인의 노래다. 17세 때 끔찍한 교통사고로 온몸이 부서진 여인, 그래도 부러진 척추를 지탱할 코르셋을 갑옷처럼 입고, 목발을 검처럼 휘두르겠다는 노래다. ‘여성의 억압’을 상징해온 코르셋이 여기서는 ‘전사’의 상징이 된다.

김소향은 고통과 절망을 모두 불사를 기세로, 그래야만 한다고 주문을 거는 듯, 비장하고도 관능적으로 춤추고 노래했다. 공연이 끝나고도 ‘향프리다’(‘김소향 프리다’의 준말로 팬들이 붙인 애칭)의 꼿꼿한 눈빛과 환청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뮤지컬 ‘프리다’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 9명. 주인공 ‘프리다 칼로’는 배우 최정원, 김소향이 맡는다. ‘레플레하’ 역은 전수미, 리사, ‘데스티노’는 임정희, 정영아, ‘메모리아’는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이 맡는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프리다’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 9명. 주인공 ‘프리다 칼로’는 배우 최정원, 김소향이 맡는다. ‘레플레하’ 역은 전수미, 리사, ‘데스티노’는 임정희, 정영아, ‘메모리아’는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이 맡는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프리다’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혁명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레베카’,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등 인기 대극장 뮤지컬을 주로 제작해온 EMK가 처음 선보이는 소극장 공연이다. 2020년 제1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약식 공연으로 호평받고 창작 뮤지컬상도 받았다.

액자식 구조의 뮤지컬이다. 칼로가 ‘더 라스트 나이트 쇼(The Last Night Show)’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레플레하·데스티노·메모리아라는 세 진행자와 함께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회상, 상상, 인터뷰를 오가면서 현대적인 색채와 해석을 덧입힌다.

여성 배우들만 등장한다. 주인공 칼로(최정원·김소향 분)를 제외한 세 배우가 일인 다역을 소화한다. 유쾌한 장난꾸러기였던 유년 시절의 칼로, 사고 이후 칼로 곁을 맴도는 사신(死神), 칼로의 상상 속 의사가 된 ‘평행세계’의 프리다, 애증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로 분한다. 전수미, 리사, 임정희, 정영아,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 배우가 출연한다. 박정자 배우가 쇼 연출자로 ‘목소리 기부’를 했다.

뮤지컬 ‘프리다’ 연출진과 배우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프레스콜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뮤지컬 ‘프리다’ 연출진과 배우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프레스콜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프리다 칼로의 삶은 여느 소설보다 더 비극적이고 매혹적이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홀로 침대에 누워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당차고 영민한 10대로 성장했다. 멕시코 최고 수재들만 진학하는 국립예비학교에 진학해 의사를 꿈꿨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은 교내 엘리트들의 모임 ‘카추차(Cachuchas)’에 들어갔고, 모임의 리더인 알레한드로(알렉스)와 사랑에 빠졌다.

17세가 되던 1925년, 칼로와 남자친구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했다. 부러진 철제 난간이 프리다의 몸을 관통했다. 그날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9년간 그의 삶은 망가져 가는 몸과의 투쟁이었다. 수술만 서른다섯 번 받았다. 세 차례 임신을 시도했으나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칼로는 지지 않고 싸웠다. “죽음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나는 죽음을 놀리고 비웃는다”고 했다.

“멋진 인생 따윈 없어도 돼/화려한 조명도 필요 없어/하지만 조그만 숨이 남아 있다면/다시 날 수 없다 해도 다시 뛸 수 없다 해도/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면/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포기하지 마, 난 프리다 칼로...” (뮤지컬 ‘프리다’ 넘버 ‘코르셋’ 가사 중)

“날 살게 한 건 하얀 캔버스/날 키운 건 까만 로맨스 (...) 부서진 기둥을 부여잡아/강철로 둘러싸인 심장을 쥐고/광활한 길 위를 당당히 버텨/낭만 따윈 없어도 돼/난 이미 충분하니까...” (뮤지컬 ‘프리다’ 넘버 ‘라비다’ 가사 중)

뮤지컬 ‘프리다’ 연출진과 배우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뮤지컬 ‘프리다’ 연출진과 배우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공연은 두 주제를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망가진 몸과의 투쟁, 그리고 칼로와 당대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로 리베라와의 사랑 이야기다. 21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딛고 결혼한 커플이지만, 남편의 거듭된 불륜, 세 번의 유산 등은 칼로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칼로에게 그림은 말 못 할 고통을 표현하고 이루지 못한 소망을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공연에서도 천정까지 걸린 스크린에 여러 작품이 번갈아 등장한다. ‘작은 칼자국 몇 개’(1935~1936)는 남성이 “홧김에” 연인을 단도로 찔러 살해하고, “작은 칼자국 몇 개를 냈을 뿐” 결백하다고 주장한 사건을 접하고 그린 그림이다. 칼로는 자신의 친동생과 남편의 불륜으로 받은 충격, 여성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이 그림에 투사했다고 한다. 오른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기로 한 1953년엔 날개 달린 자신의 몸을 그렸다. ‘두 발이 왜 필요하겠는가,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생을 향한 강한 의지도 엿보인다. ‘전사(戰士)의 환생’이라는 벌새, 자궁으로부터 자라나 멕시코 대지 곳곳에 뿌리내리는 녹색 덩굴이 그림 곳곳에, 무대 스크린에 등장한다. 47세로 삶을 마감하기 며칠 전 그린 수박 정물화엔 이렇게 적었다.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극 중 칼로가 마지막 무대에서 입고 나오는 드레스는 안감 전체를 색색의 꽃으로 장식해 봄날의 들판에서 춤 추는 듯 화사하고 발랄하다.

주체적인 여성 인물이 이끄는 서사, 강렬한 음악, 힘 있는 노랫말, 실력 있는 ‘언니들’이 모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소극장 공연답게 배우의 숨소리,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이 크다. 배우들이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며 즉석에서 스캣이나 탭댄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추정화 대본·연출, 허수현 작곡·음악감독. 5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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