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를 위한 변론] (끝)

11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계단에서 열린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두려워하라, 여성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시스
11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계단에서 열린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두려워하라, 여성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시스

왜 여성들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인 주체로 간주되지 못하는가? 여성들의 사회적 비판, 욕망, 바램, 좌절은 왜 정치적인 것으로 수용되지 않는가? 이 글은 이런 질문을 한국사회에 함께 던지고,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2030 여성들의 선거행위를 정치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하고자 한다. 여성들이 보여준 정치적 실천은 문제 있는 현실에 도전하고 있다는 진단적인 징후 혹은 고발의 표식으로 읽고,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여성들은 정치의 장에서 분명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행위자이다.

선거가 끝난 후 내가 만난 2030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수행한 정치적 실천에 권능감을 느끼지만, 윤석열 후보의 당선 이후에는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끔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선거 기간 중 이들은 강하고 차별받지 않는 여성이 되고자 하는 것이 국가의 보호나 지원의 종식을 요구하는 표시로 읽히거나, 여성들 중 ‘특수’로 간주되는 등 소통 없는 채널 속에 갇히는 느낌을 가졌었다고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다양한 삶의 형식과 지향을 갖는 여성들은, 여전히 약하거나, 문제 있거나, 보호되거나 파악 가능한 것으로 정의되는 ‘여성’에 묶이는 현실 속에서 곤경에 처하곤 한다. 이것은 새로운 여성들의 부상에 대한 정치적 처벌처럼 당도하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백래시다. 2022년의 현실에서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2022년 대선 국면에서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지지 투표 행위는 정치적인 선택이었고, 또 시위였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평과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후 첫 발언에서 통합과 법치 그리고 소통을 강조했다. 언론들은 선거 국면에서지지율이라는 정치적 전략 혹은 정치 속에서 강한 갈라치기의 대상이었던 2030 남녀의 기여분을 정당에 따라 분석하지만,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성별에 따른 갈라치기 자체를 부인했다. 따라서 공식적 통합 논의에 남녀의 갈등이나 차이의 문제, 정치적 전략의 과정들은 암묵적인 사실이라 하더라도 언급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강화’ ‘구조적인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언술에 이미 성별정치가 함의되어 있고, 이 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여성들 그리고 이 말이 동원해내는 기억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2030 남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성별과 세대의 차이와 차별을 어떻게 통합과 소통의 틀 속으로 가져갈 것인지가 큰 관심이다. 이대남이 정치적인 범주로 구성되면서 보수의 지지 세력으로 등장했고, 이제까지 주류정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젊은 여성유권자들 또한 분명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공적영역에서의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등장은, 이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그리고 어떤 현실에 도전하는 주체들인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들을 사회통합의 중요한 집단으로 생각한다면 변화하는 여성 집단, 시민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을 배우는 여성들이 맨 처음 배운 언어 중에서 강렬하게 기억하는 명제 중 대표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가족, 연애, 출산, 성적 욕망, 낙태, 여성다움 등 여성으로서 사는 개인적인 삶에, 일상의 삶에 가부장적, 사회적, 문화적 권력관계가 깊이 배태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여성이란 범주가 권력의 장이 매개되어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은, 여성이 사회에 존재하는 방식을 인식하는 지점이고, 여성의 삶의 양식 그 자체가 사회적 산물임을 아는 순간이다. 젠더가 어떻게 여성을 둘러싼 세계를 분할하고 조직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변화를 시도해야하는지를 알게 된 여성들은 연대적 행위를 통해 그 정치적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대안의 장으로, 미래의 장으로 정치를 이해한다.

대선의 공간은 현재의 정치체제 내에서 공론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2022년 대선 국면은 한국의 2030 남성과 2030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새롭게 범주화해냈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과정에서 2030은 정치적인 토큰이었고, 사건이었다. 보수 진영에서 나온 당선자가 사회통합과 소통에 대해 어떤 리더십을 가질 것인지, 여성가족부를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 개혁, 해체할 것인지, 성폭력에 대한 직간접적인 사건 경험이 있는 2030 여성들에게 무고죄의 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차별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등등... 대통령 당선자의 대표적인 말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아직 이러한 말들이 어떠한 기반 위에서, 어떤 틀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남녀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이 없다’는 말은,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차별의 구조적 장애를 제거해주었으니 모든 조건이 동일해졌고, 그러니 이제 발생하는 문제들은 개인적인 차이나 상황에 기인한다는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이러한 접근을 법적 책임 모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모델은 각 개인을 다른 사람들과 무관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각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각 개인이 져야한다는 잘못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 모델로는 강자 혹은 지배층의 무책임한 행위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고, 행위의 배경이 되고 있는 구조와 제도와의 관계, 타자의 삶의 조건에 공동체 성원들이 져야 할 책임의 문제를 묻는데 실패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에 반해 그는 정치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권력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관계적 개념으로서의 젠더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 책임 모델보다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가 요구된다. 윤석렬 당선자가 성차별의 문제, 여가부의 문제, 무고죄 강화의 문제를 정치적 책임의 문제로 접근하기를 기대한다. 

아시아여성학회장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성혜련 객원기자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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