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집권하면
여성 노동 정책 어떻게 달라질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새 정부의 여성 노동 정책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일단 모성·부성 보호 제도가 강화된다. 육아휴직 기간,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 난임치료휴가가 확대된다.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도 기대된다. 윤 당선자는 “양성평등 실현의 핵심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 돕는 것"이라며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을 충분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채용부터 퇴직까지 전 과정에서 성별 격차 실태를 드러내는 ‘성별근로공시제’ 공약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기업의 자발적 참여’라는 꼬리표를 달아 김이 빠졌다.
오히려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우려를 샀다. 윤 당선자는 “성평등 공약”이라고 주장하나, 명백히 성차별을 더 부추길 수 있는 정책들이다.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성의 폭넓은 인정 등 주요 노동문제에 대한 공약도 실종됐거나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육아휴직 확대 등 일·가정 양립 지원 강화
난임휴가 확대·월 100만원 부모급여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의지도
윤 당선자는 모성·부성 보호 제도 강화를 약속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현행 10일에서 20일로 연장한다. 육아휴직 기간도 남녀 각각 1년에서 1.5년씩, 부부 합산 총 3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자영업자 등의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신·출산 전 성인여성 건강검진 지원 확대, 모든 난임 부부에 치료비 지원, 난임휴가 기간 7일로 확대, 임신·출산 관련 모든 질병의 치료비 지원 확대, 자녀 출생 후 1년간 월 100만원 부모급여 제공도 약속했다. 윤 당선인 측은 임신·출산·양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해 “출생률 회복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의지도 드러냈다. 사회복지종사자 임금적용 기준 단일화, 돌봄서비스 제공인력의 근로환경 및 처우개선 등을 약속했다.
실효성 의심스러운 공약도
채용부터 퇴직까지 성별격차 데이터 공시하는
‘성별근로공시제’...기업 자발적 참여 그쳐
플랫폼 노동자 보호 등 사각지대 해소방안 부실
주52시간제 등 노동시간 탄력적 운영
각종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 기조’ 예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공약들도 있다. 먼저 ‘성별근로공시제’다.
채용과 근로, 퇴직 등 모든 단계에서 성비와 성별임금격차를 공시한다는 구상이다. 채용 단계에선 지원부터 최종 합격까지, 근로 단계에서는 부서별 근로자·승진자·육아휴직 사용자 성비와 성별임금격차를 공개한다. 해고자·조기 퇴직자·정년 은퇴자의 각 성비도 밝힌다. 500인 이상 기업부터 적용,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여성계는 오랫동안 성별에 따른 임금, 직무, 승진, 고용 형태 등 ‘성별 격차’ 데이터 공개를 요구해왔다. 우리 법은 고용 성차별을 금지하나, 여성을 배제하는 관행과 문화는 아직 남아있다. 여성이 결혼·임신·출산을 이유로 주요 업무나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청소, 커피 타기 등 잡무나 허드렛일이 ‘여성의 일’로 취급되기도 한다. 성별격차 데이터 공개는 이러한 성차별 실태를 파악할 첫 단추다. 서울시가 2019년 지자체 최초로 산하기관의 직급별·직종별·재직년수별 성별 임금을 공시하기 시작했으나, 민간으론 확대되진 않았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해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영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2011년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성평등 임금 공시제를 시행했는데, 참여율이 오르지 않자 법률을 개정해 2018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공시를 의무화했다.
윤 당선자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우리 사회엔 배달 라이더, 미용사, 백화점 매장 판매원, 웨딩플래너, 텔레마케터, 학습지 교사 등 노동자인지 프리랜서인지 법적 경계가 불분명한 노동자가 219만명이 넘는다(한국고용정보원, 2021). 여성이 46.5%다. 플랫폼 노동의 성별임금격차도 뚜렷하다. 남성이 월 169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133만원을 번다. 이런 ‘그림자 노동’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반갑지만, 관련 법률 제·개정 여부, 노동자성 입증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빠졌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약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상시 지속 업무 비정규직 사용금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관계법 전면 적용’, ’초단시간 근로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별다른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이미 주52시간제 등 노동시간 탄력적 운영, 각종 노동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 기조’를 예고한 윤 당선인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정산) 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대하는 공약도 장시간 노동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공약이라는 의견이 많다.
앞서 윤 당선자는 ‘주 120시간 노동’,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강성노조’ 등 반노동적 발언을 거듭해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은 윤 당선자가 “노동에 대한 무지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며,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해 제시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성범죄 무고죄 법정형 강화와
여가부 폐지가 “청년·양성평등 공약”?
직장 내 성범죄 가해자 보복 등 악용 우려
부처 폐지 후 정책 수행 구체적 대안 부재
윤 당선자는 성범죄 무고죄 법정형 강화, 여가부 폐지 같이 우리 사회 성평등 수준을 악화할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웠다. 심지어 “청년 공약”, “성평등 공약”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여성계는 성범죄 가해자가 무고죄를 악용해 피해자를 옥죄는 현실을 안다면 무고죄 강화를 약속할 수 없다고 거듭 비판해왔다. 실제로 무고죄로 처벌된 성폭력 피해자도 극소수다. 2017~2018년 성폭력 무고로 고소된 사례 중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6.4%에 그쳤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특히 직장 내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거나 피해 신고에 보복할 목적으로 무고죄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일이 많다(직장갑질119, 2022). 무고죄 강화 공약이 “매우 우려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여가부 폐지는 명백한 퇴행이다. 새 정부가 성평등 실현을 위해 관련 부처의 행정집행력을 강화해야 할 시기에 나온 공약이다. 지난 7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꼴찌를 기록했다. 성별임금격차, 이사회 여성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주요 항목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윤 당선자는 고용노동부 산하에 한국형 ‘양성평등 고용 기구’를 설치해 성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 등을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구체적인 방안과 예산 관련 내용은 찾기 어렵다. 차라리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인 여가부의 권한과 예산, 조직을 늘리고, 최소한의 성차별이나 직장 내 괴롭힘 시정 명령 권한이라도 확보하도록 하면 어떠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여가부 폐지’를 고수한다. 부처 폐지 후 구체적 정책 수행 대안은 아직 없다. 근본적 성차별 방지·해소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높지만, 윤 당선자는 미온적이다. 이대로는 다른 여성 노동 공약들이 무색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지난 7일 윤 당선자의 여성 노동 공약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이런 평을 덧붙였다. “여성도 노동자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