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eappl@hanmail.net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오빠와 언니는 두 살 터울이고, 언니와 나는 세 살 차이가 난다. 고향인 함경남도에서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오신 아버지가 외아들로 삼대 독자인데다가,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연세를 생각해 봐도 삼남매면 자녀를 적게 두신 편이다. 아이들도 많지 않고, 어려서 딸이라고 차별을 많이 받고 자랐기에 어머니는 '내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셨단다. 1928년생, 올해 일흔일곱이시니까 그래도 상당히 일찍 깨이셨다고 할 수 있다.

!A12-1.jpg

아들과 딸을 똑같이 기른다고 기르셨지만 언니는 어려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오빠는 아들에 첫째라고 잘 해주고, 동생은 막내라고 봐주고…나만 늘 찬밥이야.”

불평을 하곤 해서,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기른다고 나름대로 자부했던 어머니는 내심 당황하셨던 것 같다. 언니가 어렸을 때 한 말인데도 오래 기억에 담아두셨던 듯, 당신이 아들딸을 얼마나 공평하게 길렀는지의 증거를 새 식구가 된 며느리에게서 찾아내셨다. 물론 언니는 이미 결혼해 자기 가정을 꾸린 다음이었다.

“저희 친정은 오빠 중심인데(올케의 친정은 1남 4녀에 우리 집처럼 오빠가 맏이다), 어머님은 아가씨들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노년 세대 대부분에게 아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존재이고, 거기다가 맏이라면 거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니 맏이와 아들에 대한 기대 또한 상상초월, 예측불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모님의 노년을 옆에서 같이 하는 자녀가 누구냐 하는 것은 부모님의 기대나 희망에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면, 자랄 때 유난히 마음이 맞지 않고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 속을 어지간히도 썩히던 자식이 노년의 부모님 곁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결혼할 때 그렇게도 마음에 차지 않아 몹시 반대를 하고 죽어도 같이 살지 못할 것 같았던 며느리와 어느 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그 며느리에게 완전히 의탁하고 사시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 가까운 사람만 늘 가까이 머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늘 떨어져 지낸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좋고 싫은 감정이 버무려져서 뒤섞이고 거기에 삶의 때가 묻어가면서 관계가 깊어지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이리라.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2학년 때 같은 반 짝으로 만났는데, 아래로 고만고만한 동생 다섯이 있었다. 맏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친구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고 있었고, 여섯 명의 어린 자녀를 거두느라 팍팍해진 어머니에 대해서는 늘 불만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우리 엄마와 나는 원래 궁합이 안 맞는대!” 어머니랑 사이가 좀 좋을 때는 '웬일이지' 하는 반응이었고, 싸움이라도 할라 치면 '우리는 원래 그러니까' 하면서 화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차라리 궁합이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 친구도 친구지만 어머니 역시 딸이 못마땅해 눈을 흘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내내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모녀는 그러나 이제 둘도 없는 친구다. 친구는 일본에서 결혼을 했고, 최선을 다해 한국에 있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머리 허연 어머니는 '그 애가 멀리 살면서도 동생들 다 거두고, 늙은 나를 이렇게 보살펴줄 줄은 몰랐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내 친정부모님들도, 삼남매 중 가장 별나서 기르기가 제일 힘들었다는 막내인 나와, 이렇게 오래 가까이에 살면서 노년을 보내실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것이다. 정말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른다. 부모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