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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페어 레이디> 스페셜 에디션은 2년간 120만 달러를 들여 디지털 복원한 영화 외에도, 별도 디스크에 스페셜 피처를 가득 수록해 놓았다. 이 중 오드리 헵번의 노래를 더빙한 마니 닉슨의 코멘터리가 인상적이다.

“헵번은 자신의 노래를 폐기하고 나의 노래로 더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갔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곧바로 사과했다. 노래가 틀릴 때마다 내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여 그녀의 인성을 짐작케 했다. 내 이름은 크레디트에 오르지 못했다. 더빙했다고 작품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나중에 내 이름이 들어갔지만.”

<…레이디>는 헵번의 필모그라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지만, 노래 더빙 때문에 불편한 영화가 되었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의 뮤지컬 무대극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는 줄리 앤드루스였다. 그러나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6년을 롱런한 히트작을 영화로 만들면서, 워너브러더스사는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으로 유명해진 헵번에게 일라이자 역을 맡겼다. 다른 배역은 무대극 배우를 그대로 기용했으면서. 이 때문에 앤드루스는 동정을 받았고, 그녀의 조국 영국에서는 <…레이디>보다 <메리 포핀스>의 인기가 높았다.

<…레이디>에서 헵번은 여배우 조련에 능한 조지 큐커의 지도로 멋진 연기를 펼쳤고, 감정을 듬뻑 실어 노래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나탈리 우드, <왕과 나>의 데보라 카의 노래를 대신한 가수 닉슨에게 더빙을 맡겼다. 헨리 교수역의 렉스 해리슨도 노래를 못해 곡조를 읽는 편법을 썼으면서도. 당시 헵번은 “두 사람의 노래로 한 사람의 노래를 만드는 할리웃 기술에 경의를 표한다”며 겸손하게 인터뷰했다.

뮤지컬 영화 주인공이 더빙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헵번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레이디>는 12개상 후보에 올라 8개상을 받았지만, 여우주연상은 <…포핀스>의 앤드루스 차지가 됐다. 수상 직후 앤드루스는 “헵번이 후보에 오르지 못해, 상을 타게됐다는 소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고개를 숙인 채 “정당한 이유로 수상했다고 여기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레이디>의 메이킹 필름에서 할머니가 된 앤드루스는 “정서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정서 탓인 듯 싶다”고 웃으며 말한다.

코멘터리와 메이킹 필름에서 이런 사연을 듣고 나니 앤드루스, 헵번, 닉슨 모두 재능과 인품이 남다른 스타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혹 여성이기 때문에 캐스팅 불발, 더빙, 크레디트 누락의 홀대가 심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상업적 고려가 우선이었겠지만.

<…레이디>에서 일라이자는 자신을 갖고 실험한 헨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친절을 원할 뿐이다. 무시하는 건 싫다. 당신을 우러러봤지만, 이젠 당신 없이도 혼자 설 수 있다.”

여성비하 영화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선명한 색상과 활기 넘치는 노래로 되살아난 <…레이디>를 다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마이 페어 레이디 SE/ My Fair Lady SE

감독: 조지 큐커/ 주연: 오드리 헵번, 렉스 해리슨/ 1964년 작/ WB/ 172분/ 12세

DVD 칼럼니스트 oksunny@ym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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