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신 냉전체제의 도전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신 냉전체제의 도전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22.03.08 10:26
  • 수정 2022-03-12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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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주택가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장거리 포격을 늘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마리우폴=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주택가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장거리 포격을 늘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1814년 8월 14일, 이웃 노르웨이와 벌인 전투는 스웨덴의 마지막 전쟁이었다. 이후 오늘까지 정확히 208년 동안 스웨덴은 전쟁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스위스와 달리 국제협약에 의해 중립국 지위를 인정해 준 경우가 아닌 스스로 어떤 전쟁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중립정책으로 수많은 전쟁의 위기에서도 이 정책은 유지되어 왔다.

세계2차대전은 중립외교 정책의 가장 큰 실험대였다. 독일이 점령하고 있는 노르웨이에 군장비와 군수물자 이동을 위해 육로를 개방하지 않을 경우 침략을 한다는 최후 통첩 후 병력이 육지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는 조건으로 철로만은 허용하는 외교협상을 이끌어 냈다. 독일의 위협에 따라 육로를 개방했다는 국제적 비난은 받았지만, 노르웨이의 왕과 왕실가족이 피난하는 것을 도와 영국에 임시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1939년 핀란드가 소련의 침공을 받았을 때 9500명의 자발적 의용군은 묵인해 민간주도로 전쟁에 참여하면서 70,000명의 아동을 신속하게 받아들이는 등 인도적 지원에 공을 들였다. 모두 중립정책을 고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다그 함마쉘드(Dag Hammarskjöld)라는 2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스웨덴은 1963년 내전을 겪고 있던 콩고지역에 6300명의 평화유지군과 2만명의 민간지원단을 보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는 코소보, 이라크, 키프러스, 아프가니스탄 등의 분쟁지역에 적극적으로 유엔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등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의 전쟁지역에서 사후 전쟁관리와 인도적 지원으로 중립국의 지위를 지켜 왔다.

스웨덴이 200년 이상 중립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강력한 무기는 무엇보다 자주국방능력이었다. 인구천만도 안된 나라가 2차 대전 이후 핵무기생산기술, 전투기, 헬기, 잠수함, 군함, 탱크와 장갑차, 대전차미사일과 이동식 미사일발사장치까지 자체 생산이 가능한 자주국방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세계무기수출국의 지위를 가지고 강력한 중립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군사적 전략에 충실해 온 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스웨덴이 200년 이상 지켜온 중립외교정책을 한 순간에 포기하게 만들었다.1995년부터 경제공동체인 유럽연합(EU)에는 참여했지만, 북대서양 군사기구(NATO)에는 가입하지 않아 친서방적 중립정책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푸틴이 시작한 이번 전쟁에서는 EU국가들의 적극적 경제제재와 군사지원에 보조를 맞춰 왔다. 스웨덴은 5000개의 대전차무기, 야전물품 등을 포함해 경제지원까지 합하면 1억 유로 상당의 군사지원을 즉각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교전국가에 직접적 군사물자 지원은 전쟁개입이라는 국제법 규정에 따라 이제 스웨덴은 중립국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다.

왜 스웨덴은 200년간 유지해 온 중립정책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당연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속해 있지 않은 핀란드와 스웨덴은 바로 육지와 바다 사이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바로 침략을 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노출돼 있다. 스웨덴이 군사물자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결정한 날 러시아의 정찰기가 바로 스웨덴 영공에 침입해 군사적 경고를 날렸다.

핀란드 상황도 마찬가지다. 급기야 스웨덴과 핀란드의 지난 주말 두 여성 총리가 긴급 정상회의에서 공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나토의 기동군사훈련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핀란드의 경우 국민의 75%가 나토 가입을 지지하고 있지만, 스웨덴은 아직 41%만 나토 가입에 긍정적이다. 그만큼 전통적 중립정책의 향수에 젖어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빠르게 친서방 군사동맹에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나토 가입에 절대 반대하던 극좌파 좌익당과 환경당 지지자들까지 지지에 동참하고 있다.

1989년 이후 더 이상 인류의 역사에 대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관망하면서 국방비를 대폭적으로 축소해 복지예산으로 돌렸고, 전국의 군 시설을 폐쇄하고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는 등 스스로 병력을 약화시켜 온 결과 이제는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보들, 문제는 경제야!” 라는 한 마디로 공화당 후보를 쓰러뜨린 민주당 클린턴 후보는 재직 중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으로 탄핵까지 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으나, 치명적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재선될 수 있었던 발판도 결국은 경제만 잘하면 다 용서될 수 있다는 국민정서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이 같은 레토릭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문제는 안보야”를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 깨달아야 할 때다. 안보와 경제의 관계는 홍수 한 번으로 쉽게 무너져 버리는 모래 제방둑과 같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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