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정당으로 환골탈태”
“희망정당으로 환골탈태”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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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신인·여성 50% 공천 약속 꼭 지켜”
지난 2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66년만에 여성정치사의 획을 그은 첫 거대야당 여성대표가 탄생, 여성 정치리더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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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51.8%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 대표가 된 박근혜 의원의 일성은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휩쓸려 정치 잘못을 저질렀고 능동적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능력이 부족했었다”는 당과 자신에 대한 뼈아픈 반성으로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천막당사'에서 집무를 시작한

박근혜 대표.<사진·민원기 기자>▶






전당대회 후 박 대표는 ▲여성인사를 포함한 정치신인 우선 공천 ▲비리 연루 의원 제명 ▲정치자금 인터넷 공개 등 '한나라당 구하기 청사진'을 내놓고'천막'당사에서 본격적인 집무를 시작했다. 당내 여성인사들은 박대표의 선출을 환영하면서 개혁정당에 대한 기대를 보이고 있다. 한 당직자는 “당이 살아남기 위해 박 대표가 선출된 것”이라며 “당대표 여성시대가 열린만큼 여성 정치 진출에 한 획을 그었다”고 의의를 밝혔다.



탄핵·총선 정국에 '박근혜 효과'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표가 여성정치에 새 비전을 열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은 전당대회장에서 이뤄진 박 신임대표와의 일문 일답.



-총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 전략은 무엇인가.



“선대위 구성은 같이 논의하겠다. 총선 전략은 지지율이 떨어졌는데 탄핵으로 인해 폭락했지만 국민들의 비판은 '뭘 잘했다고 비판하느냐'가 더 크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비판하느냐'는 말이 많다. 앞으로 거듭나는 모습, 변화된 모습으로 한나라당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총선전략이다. ”



-당내에서 대통령 탄핵철회에 대한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한 입장은.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뜻을 겸허히 수용한다. 탄핵 가결하기 전 여론조사에서 조사자 60%이상이 탄핵을 찬성을 하지 않는데도 이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야당의 상황이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섭나. 말 한마디에 한 유능한 CEO가 자살을 했다. 이는 대통령의 생각, 말은 무게가 어떠 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 대통령의 탄핵이 옳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국회의원들을 마구 몰아야 하나. 국회도 국민이 뽑은 기관이다. 그러나 일단 헌재의 판결이 나면 찬성이든, 반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법치국가 시스템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소장파 의원들이 당사 이전을 주장했다.



“당사를 매각하는데 애를 쓰고 있는데,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당 대표로 현 당사로는 출근하지 않겠다고, 천막이라도 치라고 말을 했다.”



-향후 당내 개혁 일정은.



“6월 전당대회 전까지 3개월 동안 맡은 대표로 총선 결과를 좌우하는 위치에 있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일단 희망을 주는 정당이 돼야 하지 않겠나. 전당대회에서 재신임 문제와 개혁기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당 대표로 선출된 후 여성정치 진출 화두가 더욱 거세질 것 같다. 3월말로 확정될 공천심사위의 공천 기준이 궁금하다.



“전원 신인으로 하겠다는 것과 여성공천 50%이상 할당 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원교체 등 기준을 마련한 다음 준수하겠다. 특히 비례대표 심사위원에 여성을 많이 참여시키겠다. 외부 전문가 인사들도 영입하겠다. 투명하게 공천할 것을 약속한다.”







나신아령 기자

arshin@






■대통령 딸에서 당 대표가 되기까지

98년 보선→부총재→당 총수로 정치 '초고속 승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을 벗고 거대 야당의 '당수(黨首)'로 거듭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1965년 민주당 박순천 대표 이후 최초의 여성 당대표로 당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를 퍼스트레이디 대리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1974년 피격된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5년 간 묵묵히 수행했던 그가 '아버지의 이름으로'정계에 진출하리란 예상을 한 이도 많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1979년, 27세의 박 대표는 18년간 정든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사저로 옮긴다. 이 때부터 그의 행보는 74년부터 80년까지 걸스카웃 명예총재직을 수행하고 육영재단, 새마음병원 등을 운영하며 육영재단 이사장과 영남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활동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1993년부터는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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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박근혜 대표.▶



그의 정계 진출이 본격화된 것은 2002년 4·13 총선으로, 당시 엄삼탁 후보와 재대결, 16대 재선의원의 고지에 오르면서부터다. 또한 같은 해 5월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박 대표는 당내에서 여성 몫으로 할당되던 지명직 부총재직에 오르내리던 차 '굳이 출마하느냐'는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8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인 부총재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해 정치 입문 3년 만에 전국적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한나라당 부총재직을 맡았던 그는 “당이 전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선 때만 되면 국민들에게 지지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는 발표를 하고 전격적으로 탈당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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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 선출된 후 환호하는 모습.◀





2002년, 박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비정치권 인사들과 만든 한국미래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합당한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힘입어 영남 지역의 민심을 결집하는 구심체 역할을 했던 그의 발걸음은 이후 한나라당 대선 선대위 의장으로 복귀하면서 힘이 붙기 시작, 결국 당 대표로까지 이어졌다.







임인숙 기자

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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