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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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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과는 일 때문에 만났지만 금방 마음이 통해, 일을 마치고 나서도 바로 일어서지 않고 부모님과 우리들 자신의 나이듦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같은 여자이고 30대 후반과 40대 중반이라는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비슷한 연배에, 바로 옆에서 부모님의 노화와 노쇠를 지켜보고 있다는 동질감에 힘입어 그리 되었을 것이다.
“나이 드시면 다 그런가요?” 하더니 올해 예순이 되셨다는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어머니는 참 똑똑하시고 말도 잘 통했는데, 요새는 왜 그렇게 잘 못 알아들으시는지 모르겠어요. 내 이야기를 잘 듣지도 않으시고 당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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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일흔일곱살 친정어머니 생각을 한다. '아'하면 '어'하고 알아듣던 어머니. 누구보다 민감하게 내 뜻을 짐작하고 마음을 헤아려주시던 어머니. 그러던 어머니가 기력이 약해지면서 총기도 많이 흐려지셨고 판단력도 예전 같지 않으시다. 귀기울여 듣지 않으시니 나도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당신 이야기를 혹시 내가 건성으로 들었을까 봐 걱정돼 계속 반복하신다. 어머니와 나의 이런 상황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중인데, 정말 왜 그러시는 것일까?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청력이 나쁜 경우가 아니라면, 우선은 나이가 들수록 관심과 주의를 바깥의 사물이나 행동에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부로 돌리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즉, 주변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사고나 감정에 따라 사물을 받아들이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자신이 듣고 싶을 때 듣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살아오면서 자기에게 익숙해진 습관이나 태도, 행동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잘 안 풀리니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마주 앉은 자식은 자식대로 했던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노년의 이런 특성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물론 한 집에 사는 자식들도 나이 드신 부모님과는 점점 더 말을 섞지 않으려 하게 된다. 그러니 어리거나 젊은 손자녀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노년에 접어들어 자신이 그럴 위험이 다분히 있다면 우선 이야기를 젊은 쪽에 맡기고 귀부터 열어둘 일이다. 말은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듣는 것이므로,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며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잘 알아듣지 못하고 놓친 것은, 말이 끝났을 때 솔직히 말하고 다시 들어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부모님을 둔 자식이라면 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먼저, 그 분의 속도에 맞춰드려야 한다. 가뜩이나 귀도 어두운데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져 들어오면 다 소화하실 수 없다. 천천히, 또박또박 일러드리도록 하고 잘 알아들으셨는지 반드시 되짚어 드린다. 그리고 말씀을 하실 때는 주의 깊게 잘 듣고 있다는 태도를 충분히 보여야, '혹시 못 들었을까 봐' 반복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그러니까 그 일을 내일 하시겠다는 말씀이지요?”“거기에 한번 가보시고 싶다구요?”하고, 하신 말씀을 요약 정리해 드리면 훨씬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인내심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내게는 인내심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사람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다. 우리가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변화는 눈부셔하면서도, 노화라는 변화는 아예 인정조차 하려 들지 않는데서 어려움이 생긴다. 나이드신 부모님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 부모님과 자녀 세대 모두 그 변화를 제대로 알고 서로 적응해 나가려고 노력할 때, 노년은 우리 삶의 한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