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성주의를 위한 변론]

20대 대통령 선거판에서 젠더 문제가 화제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정치적 힘을 얻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기반한 미래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서 우려스러운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기본을 다시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사학 등 다양한 분야 중견 학자들이 헌법 정신을 근거로 시민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그 핵심으로서의 성평등을 논의한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탈을 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초등학생들이 쓴 기후위기 손편지를 전달받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월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탈을 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초등학생들이 쓴 기후위기 손편지를 전달받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얼마 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이 발언은 그의 마초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고용 및 승진에서의 차별, 임금의 격차, 젠더 폭력과 성희롱 및 성범죄에 대한 법적 보호의 미비, 교육 현장에서 성적 고정 관념의 재생산, 이혼 시 재산 분할에서의 여성의 불이익… 이런 문제들을 정말 개인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사회 문해력도 결여된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면서도 실상을 은폐하려 한 것이라면 유치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20대 남성 전체를 ‘이대남’으로 구겨 넣은 까닭

국내외를 막론하고 선거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게 대놓고 ‘전선’을 형성한 사례는 없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당시 ‘여성부’)를 신설할 때는 거의 반대가 없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 폐지 여부가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외국인이나 성소수자와 달리 양적으로는 전혀 ‘소수’가 아닌 여성에게 등을 돌리는 초강수에는 그 나름의 셈법이 깔려 있으리라.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 단순히 기존의 갈등에 편승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경직된 담론과 프레임을 밀어붙이면서 여론을 호도한다. 어젠다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20대 남성을 ‘이대남’이라는 범주로 구겨 넣음으로써 일부의 강경한 반페미니즘 집단을 과잉 대표되도록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페미니즘 정서는 어떤 맥락에서 응집력을 갖게 되는가. 미국에서 1980년대에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반격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한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반격의 정치는 자신들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집단에 의한 반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고전적인 보수 세력과는 달리 이런 ‘사이비 보수층’은 스스로를 현 상태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회적 외톨이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지배 질서를 옹호하려 하기보다는 철이 지난 질서나 상상 속의 질서를 복원하려한다.”

시공간의 격차가 있는 만큼 이러한 진단을 우리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는 상통하는 지점이 있을 듯하다.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하게 느껴지고 고립과 단절 속에 실존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지금 청년들의 일반적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남성들의 경우 그런 위기의식과 자괴감을 여성에 대한 반감으로 위장해 표출하고 그런 심정적 결사를 통해 외로움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10대에 세례를 받은 일베 문화와 지난 몇 년 사이에 솟구친 공정 담론 속에서 ‘피해자 의식’이 확산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욕망 내지 ‘억울함’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과연 여가부 폐지가 ‘이대남’의 삶에 어떤 변화 줄까?

그런데 그러한 정치적 연대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만일 국민의힘이 집권한다면 20대 남성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여성가족부 폐지는 20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어루만지는 상징적인 카타르시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당은 ‘이대남’을 정치공학의 차원에서 동원할 표심으로만 여길 뿐, 그들의 인생을 진정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고루한 꼰대 정치인들과 동맹해서 자기 이익을 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허망한 배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에는 사회적인 부조리 자체를 외면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당면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그 이면에 구조적인 맥락을 갖고 있고, 어떤 체제나 시스템도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끊임없이 이의 제기를 받으며 수정 내지 개혁을 도모해야 하는데, 윤 후보는 그런 의지와 전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한다.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국민의힘은 젊은 남성들이 겪고 있는 숱한 구조적 불평등도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고 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더 높은 수준의 연대와 통합을 꾀하기는커녕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분열을 증폭시키면서 세(勢)를 모으는 행태는 자기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짓밟는 일이다. 페미니즘은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퇴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리가 되었다. 그것은 리더십의 파국을 저지하는 한 가지 보루, 시대정신의 빈곤을 극복할 긴요한 거점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 남녀 사이의 제로섬 게임이나 힘겨루기가 아님을 새삼 확인해야 할 시점이다. 기후위기나 동물권에 대한 의식의 고양이 페미니즘의 확산과 긴밀하게 맞물려 왔듯이, 대안적인 세계를 함께 일구어가는 작업에서 젠더 감수성은 앞으로 계속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는 남성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다. 최소한의 상식과 인간애를 지닌 대다수 남성이 혐오와 적대의 이미지 선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거꾸로 ‘갈라치기’를 꾀해야 한다. 생명을 돌보는 공동체,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 다양한 남녀가 손을 모아야 한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여성신문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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